[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46) 고려말 정지 장군의 갑옷

입력 2010-12-12 17:25


남해안과 서해안에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고려말 충목왕 3년(1347), 지금의 전남 나주에서 정지(鄭地)라는 인물이 태어났습니다. 무인(武人)의 기질을 타고난 그는 공민왕 23년(1374)에 왜적을 평정할 계책을 왕에게 올려 전라도안무사가 되고 우왕 3년(1377)에는 순천도병마사가 되어 전라도 일대에 침입한 왜적을 소탕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올렸답니다.

1378년에 전라도순문사가 된 그는 1380년에는 원수(元帥)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며 1388년 요동 정벌 때 안주도도원수로 출전했다가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동조하기도 했지요. 공양왕 2년(1390)에는 김저 옥사 사건으로 유배됐으나 곧 풀려나 위화도회군의 공으로 2등공신에 책록되었죠. 1391년 개성부판사로 임명됐지만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44세에 숨지고 말았습니다.

다사다난했던 고려말, 파란만장한 삶을 거쳐간 그의 갑옷은 후손들에 의해 대대로 전해져 오다 1963년 보물 제336호로 지정돼 광주광역시립민속박물관에 소장 중이랍니다. 총 길이 70㎝, 가슴둘레 79㎝, 소매 길이 30㎝로 세로 7.5㎝, 가로 5∼8㎝의 철판에 구멍을 뚫어 철고리로 연결한 이 갑옷은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갑옷으로는 유일한 유물이지요.

앞면에는 철판 6조각을 한 줄로 연결한 것이 여섯 줄이 있고 그 가운데 두 줄은 여밀 수 있도록 꾸며졌으며 뒷면은 7조각을 한 줄로 연결한 것이 다섯 줄로 등을 가리게 했습니다. 어깨와 철판없이 고리만을 이용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한 것도 이 갑옷의 특징입니다. 630여년 전 정지 장군이 이 갑옷을 입고 왜적과 맞서 싸우며 진두지휘하던 상상을 해봅니다.

최근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고려 갑옷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관심을 모았습니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는 야스쿠니신사 내 유물전시관 유슈칸에서 얼마 전 열린 ‘가미카제(神風)’ 특별전에 고려 갑옷과 투구가 전시됐다고 밝혔습니다. 갑옷은 상의와 하의가 구분된 것으로 발톱이 4개인 4조룡(四爪龍) 9마리가 수 놓여 있다는군요.

이 전시에서는 또 조선시대 갑옷과 투구,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실전용 활도 선보였다고 합니다. 투구의 이마 가리개에는 ‘원수(元帥)’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투구 위쪽으로는 용과 봉황 문양이 있어 장수의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갑옷 옆에는 ‘적국항복(敵國降伏)’이라는 글씨를 새긴 안내문을 두고 있었다니 조선시대 갑옷의 주인공이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떤 심정일까요.

야스쿠니신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A급 전범들의 혼령을 기리는 곳으로 1875년 운요호사건 때 일본이 약탈해간 활과 화포 등 군사유물이 다수 소장돼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가운데 조선시대 북관대첩비가 방치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돼 약탈된 지 100년 만인 2005년에 돌려받은 적이 있지요. 고려와 조선시대 갑옷 등 유물들도 하루빨리 귀환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