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규 시집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시어의 반복·반복…의미는?

입력 2010-12-10 23:03


이준규(40·사진) 시인은 자신만의 문법으로 시를 쓴다. 그가 4년 전 첫 시집 ‘흑백’을 냈을 때 출판사 측은 “할일 없이 서성대는 소외된 자의 넋두리”라며 이미 구축돼 있는 세계를 참견하는 듯한 특유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인이라고 소개했다. 최근 출간된 두 번째 시집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문학과지성사)에서 시인은 새 이름이나 나무 이름, 그리고 같은 구절을 여러 번 반복한다.

“내 마당에는 담이 없고 내 마당에는 담이 하얗다/내 마당에 널 불렀더니 너는 훌쩍훌쩍 마당을 지우고/내 마당에 널 앉혔더니 너는 키득키득 마당을 맛있게 먹었다/내 마당은 너무 넓어 입구가 없고/내 마당은 너무 넓어 자꾸자꾸 죽기만 한다”(‘내 마당’ 부분)

‘내 마당’이라는 구절의 반복은 내 마당이야 말로 모든 곳으로 통하는 모든 것, 다시 말해 ‘모든 것의 모든 것 되기’의 구현으로 읽힌다. ‘내 마당’을 반복할수록 어떤 리듬감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것은 삶은 무수한 반복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는 점에 있다.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내가 너를 부정하는 계절/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난바다의 오징어배가 돌아오는 계절/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내가 너의 엉덩이 살을 엿보는 계절/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청주를 마시고 울다가 체하는 계절/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너를 잃는 계절/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부분)

그가 ‘모든 것의 모든 것 되기’를 꿈꾸며 야무진 실험을 하고 있는 시편이 100쪽에 달하는 장시 ‘문’이다. “문을 연다. 흐른다. 흰색에 더해지는 흰색. 문을 열고 들어가 문 앞에 서다. 지나가다. 멈추다. 지나가다. 서다. 문을 연다. 흐른다. 문을 연다. 문을 열었다. 서 있는 너. 그것. 돌아서는 몸. 돌아서는 몸. 흐르는 너. 흐르는 너는 주름이 깊다.”(‘문’ 도입부)

같은 구절의 반복이라는 시적 전략은 그의 시가 너무 쉽게 쓰여지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언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여주고 있는 시인이라는 점에서 그런 오해는 불식된다. 이준규는 세계를 증명해 보이는 시인이 아니라 세계를 재구축하려는 시인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