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금 개헌 논의할 때 아니다
입력 2010-12-10 17:57
여권이 ‘난투극 정기국회’가 끝나자마자 개헌을 들고 나왔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개헌, 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 선진화와 국회 선진화를 위한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4년 중임, 대통령과 총리 간 분권(分權)이라는 개헌의 구체적 방향까지 제시했다.
개헌 논의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치권에서 논의를 하더라도 개헌안은 국회 통과 후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국민 뜻을 무시한 채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국가적 낭비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시점이 아니다. 북의 11·23 연평도 공격으로 국가 안보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정치권은 정부를 도와 북의 추가도발을 막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안 대표와 이 장관 발언의 진정성에도 의문이 든다. 예산국회 파행에 따른 국민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국면 전환용으로 개헌을 들고 나왔다는 의혹을 받기 십상이다. 야당의 장외투쟁과 대정부 비난 홍보전에 맞불을 놓기 위해 개헌 논의를 제의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개헌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다. 언젠가는 개헌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국민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정파적 이해, 당리당략적 필요에 따라 불쑥 내놓는 것은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로서 무책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치권 내에서도 논의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안 대표와 이 장관의 발언이 나오자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가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 내 친박계 의원들과 청와대조차 부정적 입장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백번 제안해도 소용이 없다. 지금 여권 지도자들에게 시급한 것은 장외로 뛰쳐나간 야당을 설득해 국정 동반자가 돼 달라고 호소하는 일이다. 거리로 나선 야당의 태도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여권으로선 그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개헌은 대다수 국민이 원할 때 논의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