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행 기차, 모든 일이 시작됐다… 영화 ‘투어리스트’
입력 2010-12-10 17:53
아름다운 르네상스의 도시 베네치아, 정체를 알 듯 모를 듯 위험한 여인, 경찰과 범죄 조직과 거액의 돈. 예상 가능한 이야기가 펼쳐지리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이 스릴러를 찾는 건 화려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앤젤리나 졸리와 조니 뎁이라니, 이 정도로도 화제를 모으기엔 충분하지 않나. 뜻밖의 조합도 있으니 이 영화의 연출자는 ‘타인의 삶’으로 2007년 아카데미 최우수 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플로리안 핸켈 폰 도너스마르크다.
주인공 엘리제 우드(앤젤리나 졸리)는 범죄 조직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훔친 알렉산더 피어스를 애인으로 둔 탓에 늘 경찰에 감시
당하는 처지다. 피어스의 편지를 받고 그를 만나기 위해 베네치아행 기차에 오른 그녀. 엘리제는 경찰의 눈을 교란시키기 위해 기차 앞자리에 앉은 평범한 남자 프랭크(조니 뎁)를 유혹하고, 미국의 수학 강사였던 프랭크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엘리제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도 드러난다.
무자비한 폭력과 총소리, 과도하고 잔혹한 유혈이 없어도 훌륭한 액션영화가 가능하다는 걸 이 영화는 세련되게 보여준다. 감독의 세련된 연출과 주연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는 돋보인다.
조니 뎁은 어설프고 유약하면서도 대담한 수학 강사를 맡아 복잡하고 모순된 캐릭터를 흠 없이 표현해냈다. 그간 ‘캐리비안의 해적’,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영화를 잇따라 성공시키며 대중에게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각인시킨 그이지만, 이번엔 다소 어수룩한 역할을 맡았다. 어느 역을 맡든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시켜버리는 게 졸리라면, 거장들의 실험작에서건 판타지에서건 맡은 역할로 완벽히 분하는 배우가 조니 뎁이다. 치고 때리고 부수는 일을 하지 않는 히어로라니.
엘리제의 정체와 알렉산더 피어스의 행방, 엘리제를 쫓는 마피아와 경찰의 모습이 복잡하게 뒤얽히며 영화는 엎치락뒤치락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필요 이상의 폭력에 익숙해진 관객들의 눈에는 평화로운(?) 액션이다. 고풍스러운 도시를 무대로 펼쳐지는
‘화려한’ 폭발 장면도 전혀 없고, 마피아들의 총질도 최소한에 그쳤는데 긴장감을 잃지 않고 관객을 집중시키는 감각도 평가할 만하다. 영화의 무대인 베네치아의 바다와 시가지는 제3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아름답다.
옥에 티가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티’가 너무 커서 들보처럼 보일 정도. 영화 후반부,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일거에 쓰러지는 악당들은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총에 맞은 듯 우습다. 마지막에야 드러나는 반전은 영화의 흐름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도 충격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까지 하다. 영화는 당연하게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영웅은 이겨야 영웅이다. 관객들이 이런 종류의 영화에 기대하는 건 머리 복잡한 사색이 아니라 승리의 통쾌함일 터다. 감독의 이름만 듣고 액션 영화 이상의 무엇을 기대하지만 않는다면, 100분의 이 영화 관람은 유쾌하기 그지없다. 15세 관람가.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