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총, 좋은 온도조절기될 것인가 일반 정치아류 될 것인가
입력 2010-12-09 11:24
특정인의 후보 자격 시비에 따른 정회와 속회, 선거관리위원의 사임 등 치열한 공방 속에서 진행됐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후보 자격 심사가 마침내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211명의 한기총 실행위원이 21일 오후 2시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길자연(한기총 명예회장) 목사와 김동권(한기총 공동회장) 목사 중 한 사람을 차기 대표회장으로 선택하게 됐다.
한기총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엄신형 목사)는 9일 오전 7시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내 한기총 회의실에서 선관위 회의를 속개하고 길자연, 김동권 목사의 후보 자격을 최종 인정키로 한 것이다. 전날 사임한 한동숙 목사 대신 문원순 목사가 새로운 선관위원으로 참여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 선관위원들은 지난 6일 엄신형 선관위원장과 윤종관 선관위 서기, 길자연 김동권 목사 간 합의하고 자필 서명한 내용을 무기명 투표에 부쳐 찬성 6표, 반대 3표로 전격 수용했다.
합의서는 크게 3개 항으로 이뤄져있다. 첫째, 길 목사와 김 목사는 선관위가 후보로 함께 결정해주면 그대로 수용하고 법적인 문제는 법에서 판결받기로 한다. 둘째, 길 목사와 김 목사는 함께 한기총 실행위에서 선거(투표)로 당락(한기총 대표회장)을 결정하도록 한다. 셋째, 후보로 있을 때 법에서 후보 실격 판결이 나면 즉시 후보직이 박탈되고 당선된 후에도 법에서 후보 실격 판결이 나면 즉시 대표회장직을 박탈하도록 한다. 두 후보는 합의를 번복할 시 하나님과 신앙 양심, 법 앞에서 그 책임을 지기로 했다.
2003∼2004년 한기총 대표회장을 역임한 길 목사는 현재 한기총 명예회장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에서 후보 추천을 받았다. 한기총 공동회장인 김 목사는 예장 합동 총회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개정 선거관리규정에 따르면 총회 추천을 받을 필요가 없지만 기독시민운동중앙협의회의 추천도 받은 상태다.
엄 선관위원장은 “후보 자격 심사가 계속 파행을 거듭할 경우 하나님 앞에, 한국 교계 앞에, 성도들 앞에서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다는 심정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됐다”면서 “선거운동 과정이나 대표회장 당선자가 결정됐더라도 불법이 드러나면 반드시 그에 따른 처분을 받도록 모든 일을 매우 공정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관위 결정에 따라 한기총은 연합기관에 걸 맞는 정치력이 없다는 부정적 평가에서 일단 벗어나게 됐다. 한기총 안팎에서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 교계에도 고스란히 옮겨온 것 아니냐는 혐오증까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두 후보 자격 인정으로 모든 게 해결된 것은 물론 아니다. 아직 선거과정과 더불어 특정 후보 자격에 대한 가처분 신청 결과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기총은 1988년 설립 당시와는 매우 다른 상징성을 갖게 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표회장의 말 한마디가 한국교회 정신의 아이콘이 돼버렸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기총은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갖고 한국교회는 물론 나라와 민족이 선한 길로 갈 수 있도록 건강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강하면서도 따뜻한 복음 선포의 디딤돌이자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인 논리, 철학으로 무장하는 동시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기독교 연합운동의 장이 돼야 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처럼 다수 의견의 온도를 기록하는 온도계로 만족하지 말고 사회의 온도를 바꾸고 조절하는 온도조절 장치까지 될 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건설까지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좋은 온도조절기는 외부 온도를 측정할 뿐 아니라 이상적인 온도를 유지시켜주는 기능을 아울러 수행할 수 있다. 한기총이 과연 좋은 온도조절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일반 정치의 아류로 남게 될지 21일까지는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