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신수동’ 책 펴낸 12명의 아줌마 “골목길 누비며 삶의 활력도 찾았어요”

입력 2010-12-09 18:40


“내가 쓴 글이 책으로 나왔어요.” “활자화된 이름이 낯설지만 너무 기뻐요.” 책을 펼쳐든 아줌마들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는, 정말 좋아 죽겠다는 딱 그런 표정들이었다. 이들이 출간한 책은 서울 신수동의 구석구석을 소개한 ‘뚜벅뚜벅 신수동’. 지난 8일 오후 신수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출판기념회도 했다. 책에는 신수동 골목골목과 목욕탕 미용실 등 오래된 가게 탐방기가 실려 있다. 화가 났을 때 소리 지르기 좋은 곳, 아이들과 가볼 만한 곳, 재미있는 배움터 등 알찬 정보도 담겨 있다. 또 수필과 꽁트 등 읽을거리도 푸짐하다.

A5형 64쪽의 소책자지만 3000부나 찍은 이 책의 필진 12명은 모두 아줌마들이다. 주부커뮤니티 ‘줌마네’의 2010년 ‘글쓰기학교’에 참여했던 이들로, 절반이 신수동 주민들이다. 이들은 지난 9월부터 아이템을 잡아 동네 곳곳을 취재하고, 사진 찍고, 글 쓰고, 일러스트 그리고, 편집하고, 교열까지 직접 봤다. 책 만들기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이효경(46·경기도 일산)씨는 “처음에는 우리 동네 책도 내야지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났다”면서도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것을 눈여겨보게 됐고, 무심코 취재거리를 찾게 된다”고 털어놨다.

1년 전 신수동 주민이 된 김수진(40)씨는 책을 만들면서 낡은 골목들이 재개발돼 동네가 깨끗해지길 바랐던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김씨는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있는 골목들이 보존해야 할 곳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동네에 대한 애정만 싹튼 게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세가 달라져 시나브로 지쳐가던 생활에 활기를 얻게 된 이들도 있다. 김영숙(43·서울 성산동)씨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아이와의 사이가 좋아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 모임의 최연장자인 이현숙(69·서울 신수동)씨는 “손자들에게 할머니가 만든 책이라고 보여줄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하면 된다는 힘을 얻기도 했다. 송재금(44·경기도 과천)씨는 “능력이 안 되는 일에 도전한 것을 후회한 순간도 있지만 앞으로 삶을 풍요롭게 꾸려갈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책은 꿈을 지피는 불씨가 돼 주기도 했다. 신수동에서 40년을 살았다는 오진숙(64)씨는 “시답잖게 보이던 우리 마을도 관심 갖고 보니 이야기가 되더라”면서 “평범한 내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니, 내 인생 행로를 써서 자손들에게 남겨 주고 싶다”고 했다. 편집장을 맡았던 한기애(48·서울 잠실동)씨는 “교사로 단행본도 냈었지만 전업주부로 살면서 잊고 있었던 글쓰기에 대한 꿈을 되살리게 됐다”며 즐거워했다.

10년 전부터 글쓰기 지도를 통해 여성들의 성장을 돕고 있는 줌마네 이숙경 대표는 “동네의 기록을 갖고 싶은 동장들께서 연락만 주시면 달려가겠다”고 밝혔다. 줌마네는 2009년 글쓰기 학교 아줌마 필진과 함께 ‘뚜벅뚜벅 연남동’을 펴낸 바 있다.

글·사진=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