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문일] 청와대와 개성공단이 문제다
입력 2010-12-09 17:46
연평도 포격 후 언론 보도를 보면 이미 북한에 대해 보복이며 응징을 다 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북한이 한 번만 더 우리를 공격하면 전폭기로 해안포 진지를 초토화해 다시는 도발할 엄두를 못 내게끔 혼쭐내도록 되어 있다. 서해5도에는 세계 최고의 장비가 들어가고 주민들은 요새가 된 섬 안에서 안전한 생활을 누리게 됐다. 그런데 국민은 이 말의 성찬(盛饌)을 못 미더워 한다.
누가 말했는지조차 불분명해진 ‘확전 자제’ 한마디를 만회하려는 듯 천 마디 만 마디의 전쟁 용어가 쏟아졌다. 그러나 다음 도발이 일어날 때 청와대가 철석같은 대응을 할 거라고 믿을 수 있을까. 북한은 천안함은 어뢰로, 연평도는 해안포로 도발 때마다 수법을 달리 했다. 다음번에는 하늘이 뚫리는 건 아닐까? 전투기? 아니면 미사일? 새로운 방식의 도발에 대응 지침이 없어 허둥대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있다.
참모들 능력에 불신감
이번에는 국방장관을 희생양으로 삼았지만 다음번에는 어떤 방법으로 책임 문제를 가릴 것인지. 군 통수권자는 군 경험이 없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참모진은 지리멸렬하다. 안보라인의 무능이 드러났고 외교라인은 위키리크스의 불똥이 튀었다. 홍보라인은 난맥(亂脈)이다. 청와대 수석을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짰다던 정권 출범 때의 공언은 여전히 유효한가?
성공한 참모가 성공한 대통령을 만든다. 이명박 대통령의 성패(成敗)는 4대강 사업과 안보위기 대처에서 가름난다고 볼 수 있다. 안보 위기에 관한 한 지금 청와대 비서진으로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우선 지휘자가 안 보인다. 대통령의 신임을 다투며 각개약진하는 비서관들만 보이고 대통령실장의 얼굴은 안 보인다. ‘확전 자제’ 같은 중대한 메시지가 가볍게 밖으로 나가는 데도 실장이 아무 역할을 못했다면 중대한 실수다. 인사가 잦은 것을 싫어하는 대통령이지만 지금 체제를 임기말까지 가져갈 수 있을까?
북한 어뢰와 해안포가 무너뜨린 것은 햇볕정책뿐이 아니다. 현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며 ‘그랜드 바긴’도 함께 날아갔다. 대북 정책이 아니라 대북 전략이 필요해졌다. 북한은 천안함과 연평도에서 두 번이나 한국군의 허약 체질을 확인했다. 간을 봤으니 먹는 일만 남았다. 추가 도발을 언제, 어떻게 할지는 북한의 선택이다. ‘김정은 대장’에 걸맞은 전공(戰功)이 두 번으로 족할까.
신임 국방장관이 쏟아내는 강경 발언과 달리 마땅한 보복 수단이 없는 게 현실이다. 몇 대 더 맞더라도 경제와 평화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진심을 말하는 국민도 있다. 이라크와 아프간에 병력을 전개한 미국은 북한까지 상대하기 어렵다. 미국 합참의장이 엊그제 방한해 한국의 자위권을 존중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규모 인질사태 막아야
강력한 응징을 믿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개성공단이다. 121개 기업의 직원 400여명이 적지(敵地)에 체류하고 있다. 이들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개성공단의 정책적 가치는 상실됐다. 김관진 국방장관도 개성공단 폐쇄문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연평도 주민을 인간방패로 지칭했다. 개성공단 체류자들이야말로 저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인간방패가 된다. 북한 주민 인권은 안중에 두지 않는 저들이 한국 국민을 온전하게 대할 리 없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은 이때 쓰는 말이다.
입주기업들이 입는 경제 손실이 크다 해도 400여 인명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개성공단에 잠재적 인질들을 놔둔 채로 북의 공격에 대응해 ‘강력한 응징’을 하는 것은 국민을 유기(遺棄)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개성공단과 강력 응징은 모순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게 기본이다. 국민이 인질로 잡히기 전에 서둘러 철수시켜야 한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