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기 정치 지양] ‘내편 아니면 적’인가 ‘따로 또 같이’인가

입력 2010-12-09 17:19


한국 정치의 편 가르기 관행은 정치 발전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문제다. 큰 사안이 터질 때마다 정치권은 합리적인 대안이나 결론을 찾기보다 편을 나눠 다투기 바쁘다. 이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증폭시키고, ‘정치 혐오증’을 낳았다. 경제위기 극복,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성공 개최 등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며 대한민국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로 꼽히는 영·호남 갈등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일정 정도 희석됐다. 반면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오히려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4대강 사업 등 국책 사업을 둘러싼 수도권과 해당 지역 간의 갈등, 또 사업 추진 과정에서 빚어진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수정론 제기로 시작돼 10개월간 온 나라를 흔들다 백지화된 세종시 논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충청권과 수도권, 여당과 야당도 모자라 여당 내 친박근혜계와 친이명박계로 나뉘어 싸우는 모양새로 번졌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로 원안을 고수하던 친박계와 야당, 충청권이 승리한 듯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패자다. 정치권은 물론 찬반으로 나뉘었던 충청도민들 간에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원안이 그대로 추진되면서 세종시의 자족 기능 부족 문제가 새롭게 떠올랐고, 수정안 추진자들이 지적했던 행정 비효율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합리적 대안을 찾기보다 정파적 이익에 매몰돼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이렇듯 매번 이슈가 터질 때마다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싸우면서 정치권이 국민의 이해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2 지방선거를 뒤흔든 무상급식과 최근 떠오른 감세논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무상급식을 찬성하면 국민을 위하고, 무상급식을 반대하면 가진 자들의 논리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정치 프레임’을 만든 것이다. 감세 역시 국민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 중책이지만 ‘부자 감세’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이분법에 빠졌다. ‘감세 찬성=부자 세력 옹호’가 되어버린 것이다. 기업형 슈퍼마켓(SSM)법을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법안에 반대하면 반서민 세력으로 규정된다.

문제는 우리 편 아니면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정치 관행의 폐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점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박찬욱 교수는 “정치권의 편 가르기로 정책 집행이 지연되고, 이에 따라 국민의 불신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정치 무관심을 낳고 견제 받지 않는 정치권이 편 갈라 싸우도록 내버려두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옳고 그름을 결정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도 편을 갈라 싸우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준다는 점도 문제다. 서울대 국민윤리학과 박효종 교수는 “정치인들이 국민의 입장에서 (사안을) 보지 못하다보니 정파를 넘어서 추구해야 할 공동선을 추구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서 지식인은 물론 국민들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렵게 된다”고 꼬집었다.

편 가르기 관행은 정치권의 관용과 타협 문화의 싹을 자르고 있다. 다수는 다른 의견을 내는 소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합리적 대화와 타협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한 소수는 장외 투쟁이나 물리력 동원 등 극단적인 방법을 꺼내든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해관계가 다르면 대화하고 설득을 해야 하는데 이를 못해 결국 폭력으로까지 번지는 것”이라며 “관용의 정치 문화를 만들고 여러 집단의 권리를 인정해 정치 다원화를 이루도록 정치권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