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갈등 넘어 통합의 길로] 진보-보수 이분법 잣대 접고 인간 중심 잣대 펴야
입력 2010-12-09 17:21
해방 이후 이념 갈등은 주로 정치권을 통해 확대 재생산됐다. 정치적 현안이 있을 때마다 정치권은 좌우로 갈라져 정쟁을 되풀이했다. 특히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를 두고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은 서로를 ‘종북’과 ‘반북 수구’로 치부하며 대립하는 양상을 반복했다. 문제는 이념 대립은 포장에 불과하고 본질은 이익 대립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로 이념이 특정 정치권력과 결탁돼 순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9일 “이념 대립이라면 서로 추구하는 가치가 부닥쳐야 하는데 진보든 보수든 이념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고 각자 추구하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들 사이의 이념 대립보다 정당 사이의 이념 격차가 커 이념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내영 아세아문제 연구소장은 “국민들의 이념 성향은 2002년 조사에서 진보 41.1%, 중도 26.7%, 보수 32.2%로 분류됐는데 2009년에는 진보 29.4%, 중도 41.2%, 보수 29.4%로 중도로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반면 같은 조사를 주요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했을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 사이의 이념 격차는 예전보다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권과 국민 사이의 괴리 현상으로 대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갈등을 제도적 틀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 나가는 것을 정치라고 정의한다면 한국정치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경제·환경 등 이슈도 정치인들이 이념을 주입,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통제하고 장악하려 드는데 이것들은 모두 과용”이라며 대표적인 예로 ‘세종시’ 문제를 들었다. 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법학과 교수 역시 “이념 갈등이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며 “과거 좌우 세력간 대결이 그대로 남아서 사회적 비용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소모적인 이념 갈등의 해법 역시 정치권에서 찾아야 할 몫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변화에 발맞춰 좌우 이분법적 잣대를 극복하는 게 중요하며 정치권에서 먼저 극복하기 위해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성걸 교수는 “이념을 바탕으로 한 경쟁은 정책 경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며 “유권자들 역시 정책을 걸고 그것으로 선택받는 정치인을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사회 전반적인 가치관의 변화와 이를 위한 제반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세일 교수는 “공동체 가치관의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명진 목사는 “정치적 가치든 이념이든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우리 사회가 인간 중심의 가치를 되찾을 때라야 비로소 진보 보수를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관계에서 대립적 상황이 최소화되는 과정이 이념대립을 막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념으로부터 국민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토양들을 쌓아가야 하며 학교교육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