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여전히 ‘그들만의 富’… 작은 손으로 커가는 기부
입력 2010-12-09 17:22
도움의 손길은 언제나 낮은 사람들의 몫이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다. 미국 억만장자들이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고 해외 유명 영화배우가 사후 재산 기부를 약속하더라도 한국에선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청계재단을 통해 331억원을 기부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에 요구되는 도덕적 책무)를 실현했지만 후속 움직임을 끌어내는 데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9일 글로벌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 따르면 연간 1000만원 이상의 고액후원자 가운데 연예인, 기업인 등 사회 저명인사 비율은 9%인 데 비해 일반인 비율이 91%에 달한다. 일반인 9명이 후원하는 동안 사회 저명인사는 단 1명이 후원한다는 의미다. 사실상 십시일반(十匙一飯)인 셈이다.
월드비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단체 기부만 활발할 뿐 사회 지도층의 개인 기부는 거의 없다”면서 “개인 기부가 최근 크게 늘긴 했지만 대부분 일반인들의 기부”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는 대부분 단체 또는 일반인들의 몫”이라며 “사회지도층의 기부 문화가 외국사례처럼 정착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월드비전의 연도별 후원금 현황을 보면 기업 후원금은 2005년 7.40%에서 2006년 8.40%, 2007년 9.40%로 증가하다 2008년 9%, 지난해 7%로 하락하는 추세다. 반면 개인 후원금은 같은 기간 39.70%에서 70%로 배 가까이 성장했지만 일반인들의 후원이 증가했을 뿐 사회지도층의 기부는 제자리걸음이라는 게 월드비전의 설명이다.
이 같은 흐름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2005년부터 지난 10월까지 전체 기부액 대비 개인과 기업의 기부 현황은 각각 35.8%와 63.6%로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연도별 현황을 살펴보면 개인 기부는 2005년 32.3%에서 지난 10월 42.9%로, 기업 기부는 67.7%에서 57.1%로 격차가 소폭 줄어들었다. 모금회 측은 이에 대해 “중소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착한 가게’ 기부 프로그램의 실적이 증가했고 고액 개인기부가 활성화됐기 때문”이라며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를 보면 주로 중소기업 사장들의 기부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아너 소사이어티 멤버 가운데 가장 기부를 많이 한 사람은 홍명보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지난해 4월 가입해 약 1년 8개월 동안 11억1000만원을 기부했다. 그 뒤를 최신원 SKC 회장(9억5000만원), 혜인(개인·4억원)씨, 김영관 그린장례식장 회장(3억3000만원) 등이 잇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개인 기부가 소폭 증가하고 있긴 하지만 30대 기업 경영주나 고위 공무원 출신들은 거의 없는 게 사실”이라며 “아직 해외처럼 재벌이나 사회지도층 출신들의 기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말했다.
외국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주와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이 지난 6월 출범시킨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따르면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CNN 창업자인 테드 터너,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 등 40여명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키로 약속했다. 재산의 절반을 단순 계산으로만 따져도 1500억 달러(약 175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나아가 워런 버핏은 세계 억만장자들의 기부 독려 운동을 펼 것이라고 밝혔고, 이에 감명을 받은 홍콩 영화배우 저우룬파(55·周潤發)는 사후 99%의 재산을 기부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 지도층의 기부 실적은 처참하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5월 밝힌 우리나라의 선진화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가운데 24위에 그쳤고 특히 사회지도층의 경제 정의 실천에 대한 기여를 평가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항목은 OECD국가 중 꼴찌를 차지했다. 당시 삼성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는 호혜성과 다양성에서는 OECD 평균 수준과 격차가 컸다”고 설명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