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생들의 희망과 도전] 요리사 신이랑·발레리노 김명규의 꿈과 열정… “우승하니 피로 눈 녹 듯”
입력 2010-12-09 21:24
국민일보가 창간된 1988년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최대의 호황, 세계의 축제 올림픽 개최, 민주항쟁이 얻어낸 정치적 성취로 행복한 한해였다. 현재 스물두 살인 ‘88둥이’들은 대다수가 미래를 밝게 그리던 당시에 태어난 이들이다. 요즘 20대가 극심한 취업난에 찌들어 소심하고 무기력하다는 지탄을 받고 있지만, ‘88둥이’들은 패기와 열정으로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
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인근 카페에서 만난 88년생 동갑내기인 김명규씨와 신이랑씨도 그런 청년들이었다. 김씨는 올해 독일 베를린콩쿠르, 동아무용콩쿠르 등 국내외 4개 콩쿠르에 출전해 그랑프리 등 주요 상을 휩쓴 유망주고, 신씨는 2008년에 국제요리경연대회 문화부장관상, 전국기능경기대회 장려상을 수상한 ‘스타 요리사’다.
“연애는 유명 발레리노가 되고 나서 하겠다”(김명규) “하도 요리만 해서 놀 줄을 모른다”(신이랑)
둘은 2시간 넘게 걸린 인터뷰 내내 자신들의 꿈과 그를 향한 열정을 쉴새 없이 털어놓았다.
“친구들과는 다른 길, 후회 없다”
△신이랑(이하 신)=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TV도 꼭 요리 프로만 봐서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했어요. 고등학교 때 조리학교를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공부하기를 원해서 인문계를 진학했지만, 요리가 길이라고 생각해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야자(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대학은 실무를 배우고 싶어서 요리 전문학교(2년제)를 택했고요. 4년제 학교에서는 요리 실무보다 이론 중심으로 배우거든요. 전 셰프가 꿈이어서 실무를 배우는 게 더 좋아요. 4년제는 아니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김명규(이하 김)=제 꿈은 축구선수였어요. 어머니가 예전에 현대무용을 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저한테 ‘(다리)찢어 찢어’ 했어요. 그래도 무용은 하기 싫었는데, 엄마가 중3 때 용돈 10만원을 주며 축구 그만두고 무용을 한번 해보라는 제안에 넘어갔어요. 또 하늘의 뜻인지 발레 시작한지 일주일밖에 안된 상태에서 전주예고 무용과 시험을 보게 됐는데, 남자는 저밖에 없어서 미달로 들어가게 됐어요(웃음).
△신=우연하게 들어갔으면 거기서부터 힘들었겠네요.
△김=남자다운 스포츠인 축구를 하다가 쫄쫄이를 입으려니 정말 창피했어요. 친구들은 타이즈 입었다고 놀리고. 또 지방에는 남자 무용수가 얼마 없어서 여자애들이 절 신기하게 쳐다봤어요. 사춘기 때 몸에 짝 달라붙은 옷을 입은 여자애들을 봐야하니까 자꾸 야한 상상이 돼서 파트너를 쳐다보지 못했어요. 기본기가 없는 것도 문제였죠. 고등학교 내내 만날 발을 꺾고 다녔고, 밤에는 장롱 속에 발을 넣은 채 잤어요. 양치질할 땐 뒤꿈치를 들었고….
△신=저는 고3때 처음으로 지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했는데, 기대와 달리 요구사항도 제대로 못하고 시간도 오버했죠. 정말 충격이었어요. 제 신조가 실수한 건 반복하지 말자거든요. 실수 노트 만들어서 계속 연습했어요. 특히 저는 생선 무스요리를 못했는데, 대회를 앞두고 4개월 동안은 생선만 붙잡고 매달렸어요. 엄청 연습한 끝에 매끈한 무스요리를 만들 수 있었고, 그걸로 2008년 경기지방기능경기대회 금메달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대회에 8차례 나갔어요. 또래에 비해 많이 나간 편이지요. 떨어진 적도 많았지만, 탈락을 할 때마다 실수를 극복하려고 연습하다보니 기본기가 탄탄해진 것 같아요.
△김=저도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에요.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는데 엄청난 애들 사이에서 주눅 들기도 했죠. 대학 2학년 때 처음으로 나간 불가리아 바르나국제발레콩쿠르에서 예선 탈락했어요. 전 진짜 잘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총 대회 기간이 한 달인데 일주일도 안돼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더라고요. 계속 대회장에 머물면서 다른 선수들 움직임을 카메라로 찍어서 보고, 잘한다는 외국 친구들이랑 얘기해보니까 배우는 것도 많았죠. 어른들이 왜 자꾸 큰물에서 놀라고 하는지 알았죠.
“연습, 연습, 연습”
△신=2008년 국제요리경연대회 준비할 때는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종일 서서 요리하는 강행군이었어요. 집에 오면 다리가 내 다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부어있었죠. 그렇게 매일 살아도 전 이상하게 안 피곤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병원에 가서 링거 맞고 그러는데 저는 오히려 연습을 안 하면 불안했어요. 전시도 겸하는 국제경연대회에서는 준비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자 학교 이사장님 앞에서 쓰러지기도 하고, 너무 졸려 전시하다가 사라져버리고 싶을 정도였죠. 졸음 깨려고 하도 몸을 꼬집어서 멍이 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금메달을 목에 건 순간 다 잊었어요. 그때 기분은 저만 알 거예요.
△김=진짜 쉬면 불안하다는 말에 공감해요. 연습을 하루 쉬면 제가 알고, 이틀 쉬면 교수님이 알고, 3일을 쉬면 관객이 알거든요. 전 대학 1학년 때 유연성을 기르려고 하루 종일 다리를 찢는 연습을 했어요. 전 점프는 잘하지만, 유연성이 부족하거든요. 모래주머니를 양 발에 차고, 잘 때 강수진처럼 다리를 쫙 벌리고 잤어요. 아침에 다리가 안 모아져서 엄마를 불러서 일으켜달라고 했죠. 다리 혈관이 터져서 시퍼렇게 멍이 든 것도 몰랐지요.
-노력으로 다져진 기본기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이지만, 훈련의 방식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김씨는 전력 노출을 우려해 비밀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하는 식이었고, 신씨는 남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내보이는 스타일이었다.
△신=오히려 제가 먼저 (요리)시범을 하면 친구들한테 의견을 물을 수 있으니까요. 실수한 게 있으면 친구들 지적에 따라 다시 해봐요. 전 칭찬보다 지적이 좋아요.
△김=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칭찬은 넌 좀 쉬어라 이렇게 들려요. 연습 과정 찍어놓고 실수한 부분 반복해 보면서 고치는 게 중요하거든요. 요리든 무용이든 실수는 금방 보이니까요.
-인터뷰 시간이 2시간을 훌쩍 넘겼다. 김씨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오는 10일부터 바르나콩쿠르 금상 수상의 특전으로 러시아 모스크바발레단 초청을 받아 미국 709개 도시를 돌며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을 하게 되는데 공연 준비를 위해 학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김=모스크바발레단과 한 무대에 선다고 하니 떨려요. 졸업 전에 이런 공연을 하게 돼 영광이에요. 졸업하면 유니버설 발레단에 들어가요. 이미 독일, 미국, 터키, 캐나다 발레단 등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아직은 국내에서 배울게 많아서요. 하지만 기회를 봐서 해외, 더 큰 무대에 서고 싶어요.
△신=어디든 예술은 똑같군요. 저도 많은 선배들이 외국가면 더 크게 볼 수 있다고 제안을 해서, 유학을 준비 중이예요. 전문학교는 졸업했지만, 외국에서 요리를 배우고 싶어요. 지금은 어학학원을 다니면서 영어 공부 중인데, 내년 3월에는 미국으로 갈 거에요. CIA(미국 최고의 요리학교)에 가서 진짜 ‘셰프’가 되고 싶어요.
◆신이랑은
샤이니의 요리 선생님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88년 인천에서 태어났고 삼산고등학교 2학년 때 사설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요리사의 꿈을 키웠다. 올리브 채널에서 최고의 요리사를 뽑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도전 아웃백 잇 셰프’에 도전해 최종 4인 안에 들었다.
◆김명규는
1988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고, 어머니의 제안으로 전주예고 무용과에 입학하면서 무용수의 길로 들어섰다.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했고 대학 4학년 때인 2010년 독일 베를린콩쿠르 그랑프리, 동아무용콩쿠르 그랑프리, 이탈리아 로마콩쿠르 금상, 불가리아 바르나콩쿠르 금상 등 국내외 4개 발레 콩쿠르의 최고상을 휩쓸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