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혁 화합’ 전문가에 듣는다]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사상 경쟁은 건강한 국가 동력”

입력 2010-12-09 17:04


대담=김명호 워싱턴 특파원

“‘사상의 경쟁’은 매우 건강한 것이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 자체가 건강한 것이다.”

미국 내 대표적 보수주의자이자 한국을 너무도 잘 아는 헤리티지재단(The Heritage Foundation) 이사장 에드윈 퓰너(68) 박사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이렇게 규정했다.

퓰너 박사는 ‘사상의 경쟁’이 국가를 건강하게 만들며, 서로 다른 점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경우 극단적인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일종의 “성장통”으로 진단했다. 그는 “미국 정치도 과거엔 칼과 둔기로 싸웠던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퓰너 박사는 최근 북한의 도발은 한반도 안정을 위해 미국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계기라고 평가했다. 또한 중국이 좀 더 국제사회 기준에 맞게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지난달 29일 퓰너 박사를 워싱턴DC 헤리티지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에게 한국과 미국에서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립, 한반도 통일, 한·미 관계, 동북아 정세 등에 대해 견해를 들었다.

-지난 11월 2일 중간선거에서 미국민은 보수 쪽을 훨씬 더 많이 선택했다. 그 의미는.

“현재 미국민이 진보주의에서 보수주의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그동안 진보 진영이 (정책 등에서) 너무 치우쳤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등 지금까지 이어온 미국 정부와는 맞지 않는 걸 하려고 노력했다.”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이 사상적으로 분열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건강한 건가, 우려할 만한 수준인가.

“미국에선 ‘사상의 경쟁’이라는 걸 아주 건강하다고 믿는다. 워싱턴은 이런 (경쟁의) 결과에 따라 법을 만들고, 정책을 결정한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 자체가 건강한 것이다. 그것의 경쟁도 그렇다.

또 (‘사상의 경쟁’에 대한 결과로) 어떤 분야에서 서로 다른 점을 극복해 나간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큰 안건에 대해 논의하면서 절충점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내) 문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너무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두 정당의 정치적 대립을 줄이면서, 모두의 승리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한국의 정치·사회 분야에서 보수와 진보 대립은 대개 감정적이고, 극단적으로 흐른다. 보수와 진보가 창조적 통합을 할 수는 없는가.

“미국 헌법은 2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민주주의는 30∼35년 정도 됐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더 많은 시간 민주주의를 해 왔다. 미국 역사를 볼 때 젊고 패기 있는 상·하원 의원들이 칼이나 둔기로 치고받으며 싸웠던 때도 있었다. 그것은 내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 갔을 때 바리게이트를 치고, 문을 잠그고, 사람을 내쫓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민주주의 성장통의 하나이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체제’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우리가 되새겨야 하는 건 우리 모두가 국민이며, 우리가 무엇에 동의하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한국의 보수나 진보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시장에 가서 면(麵)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건 쉽다. 하지만 아이들 교육을 선택할 수 없다든지, 원하는 의사를 만날 수 없다든지 하는 건 사회적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선 초심으로 돌아가 이상적인 정부의 개입이 어디까지인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뒤에 개인의 선택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알아보고, 개개인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한국은 그것(개인 선택권의 확대)이 빠진 것 같다.”

-국가적 리더십이 갖춰야 할 최우선 조건을 꼽는다면.

“통찰력이다. 통찰력을 갖는 건 더하고 곱하는 것이지, 빼고 나누는 게 아니다. 사람들을 모으는 게지, 분리시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걸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면 아주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의 한·미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아마도 세 가지 사건, 천안함 침몰과 국제전문가들이 밝혀낸 북한 우라늄 원심분리기, 연평도 공격 등이 미국을 정신 차리게 했다. 미국은 한국과 아주 밀접한 우호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고 본다. 한·미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관계는 아주 긍정적이며, 한국 사람들도 그렇게 봤으면 좋겠다.”

-남북통일의 시기를 언제쯤으로 보나.

“통일은 한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결정이다. 내 생전에 통일을 보고 싶지만,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웃음). 한편으론 한국과 미국이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하면 지금이 통일이 될 수도 있는 시기라고 본다.

북한은 지금 강력한 정권교체가 아닌, 정당성 없는 허약한 3대세습의 정권교체를 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계속 도발하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도발하는 상황엔 한국민은 여야에 관계없이 정권을 지지해줘야 한다.”

-한반도 문제, 국제사회, 중국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중국은 북한을 바꿀 수 있는 열쇠이다. 중국은 (북한 변화에) 관심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중국이 더 원하는 건 국경의 안정이다. 더 이상 탈북자를 원치 않는다. 나로선 북한 주민들을 위해 탈북 문제가 잘 해결되길 기도한다. 또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관심을 둬야 한다는 점을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있는 정부 관계자나 학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의 이런 도발은 주변 국가들, 한국 일본 대만 등의 핵보유국화를 부추긴다. 중국도 주변의 안정을 원할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좀 더 단호해야 한다. 북한은 아주 취약해졌고, 중국은 지금 북한에 그들의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다고 말할 때다. 중국에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중 간 갈등이 많다. 바람직한 미·중 관계는.

“미국은 자신의 관심거리가 뭔지를 중국에 상기시켜줘야 한다. 미국은 동북아시아 안정에 관심이 있다. 그걸 위해 미국이 태평양권에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야 한다. 미국은 100년 이상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서태평양과 남중국해를 중국 영해로 할 수는 없다. 거기엔 (안정을 위해) 미국이 있을 것이다.

이런 메시지는 일관되게 중국에 전달돼야 한다. 그런 뒤 중국의 꿈과 미래에 대한 대화를 할 수 있고, 동의하는 부분에 ‘예스(Yes)’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안정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미국이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중국을 통제하려는 게 아니라는 점을 중국 정부는 알아야 한다.

중국은 경제 관계에 대한 규정을 결정할 필요가 있고, 국제 기준에 맞게끔 행동해야 한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한·일 관계는 어떻게 평가하나.

“일본은 한국이 과거처럼 낮은 위치의 나라가 아닌, 경제적으로도 동등한 나라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애석하게도 내 주변의 일본인들은 과거 속에 살고 있고, 과거의 한·일 관계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이 한국에 대한 관점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야 한다고 본다.”

퓰너 박사는

미국 보수진영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을 1977년부터 이끌어 왔다. 재단을 보수주의의 중심으로 만들면서,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킨 주인공으로 꼽힌다.

미국 보수진영의 우상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국내문제 보좌관을 지낸 적이 있다. 저서 ‘미국을 위한 리더십’ ‘자유의 행진’ 등은 보수주의 정치인들의 필독서이기도 하다.

아시아 문제에 누구보다 정통하다.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의견을 주고받을 정도로 한국을 잘 안다. 시카고에서 태어나 조지타운 대학을 졸업했다.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 에든버러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