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된 세제개편안… 왜 문제인가

입력 2010-12-09 01:03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국회 통과과정에서 ‘누더기’가 돼 버렸다. 미술품 매매에 대한 과세 연기 등 현실을 감안한 손질도 있지만 임시투자세액공제와 고소득 자영업자 세무검증 등 이익단체의 조세 저항을 고려한 짜깁기로 정부가 의도한 조세정책의 원래 모습을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국가재정 관리계획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세수, 원안보다 2108억원 줄어=정부는 당초 이번 세제개편안이 원형을 유지한 채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낙관했다. 여야 간 세제개편 논의의 첫 관문인 조세소위 소속 야당 의원들조차 “다른 해에 비해 이슈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폐지될 것으로 봤던 임투공제마저 직권 상정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1년 연장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이 통과되는 등 정치권 논리 앞에 좌절됐다.

현 정부의 조세정책 목표는 원래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이다. 과세율을 줄여나가는 기본 감세 방향은 유지하되 금융위기 이후 재정 상황을 고려해 불필요한 비과세 감면 등은 줄여나간다는 게 낮은 세율 원칙이다. 반면 넓은 세원은 기존 세원의 투명성과 새로운 세원 확보를 동시에 추진해 세수 규모는 늘려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넓은 세원 확보를 위해 추진했던 임투공제 폐지와 변호사 예식장업주 등 고소득 자영업자의 세무검증제도 도입 모두 본회의를 통과한 세법 개정안에서 빠졌다. 임투공제 폭을 줄이는 대신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한 고용투자공제가 반영되면서 세원의 열외 대상만 늘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내년 국세 수입도 당초 정부 계획보다 2108억원 줄어든 187조6361억원으로 추산됐다. 재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을 통한 향후 5년간의 세수증가 효과를 당초 1조9000억원으로 예상했지만 국회 논의를 거치면서 세수증가 효과는 1조3000억원으로 6000억원 줄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세정책 안정성 훼손 우려=정부가 당초 세제개편안을 통해 예정한 조세정책 방향이 정치권의 논리 앞에 뒤흔들리면서 정부 조세정책의 안정성은 물론 중장기 재정 건전성 관리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하는 조세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조세연구원 박형수 재정분석센터장은 “내년 성장률을 높게 잡았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수가 당초 기대치에 못 미칠 경우 중장기 재정 건전성 관리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회복에 대한 정부 전망이 빗나가면 2014년 재정흑자 전환도 어려워진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여야 간 논쟁거리가 적었던 올해가 이 지경이니 내년에는 (조세정책) 방향을 유지하기가 더 힘들 것”이라며 “여야 모두 색깔은 없어지고 서민·중산층의 민심 관리에 매진하는 상황이라 대선 후보가 나서서 조세정책 당론을 잡기 전까지는 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조세정책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있다. 정권교체와 함께 기존의 증세 논리를 접고, 감세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는가 하면 경제 상황과 별도로 정치논리에 따라 기존 입장을 쉽게 포기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회 표결에 앞서 다양한 경로로 조세정책 방향을 설득하고 있지만 정부로서도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동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