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유영옥] 알 권리 앞세운 군사기밀 누설 경계를
입력 2010-12-08 18:13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 대해 국회가 대북 규탄결의안을 채택한 직후 여야 간 설전이 오갔다. 우리 군의 대응 포격으로 인한 탄착점 일부가 북한 해안포 진지나 북한군 막사가 아닌 논밭에 떨어져 군의 사격 능력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답변과정에서 “북한의 정확한 피해를 알 수 없는 것은 북한군이 우리의 감청을 우려해 유선으로 통화하는 바람에 추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전투 초기부터 북한군은 우리의 감청을 우려해 유선통신을 사용했고, 유선 감청은 어렵다”고 해명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언급으로 보이나, 사실은 우리 측이 지속적으로 북한군의 무선통신을 감청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꼴이 됐다.
언론도 문제다. 연평도에 북한군의 포탄이 어디 떨어져 어떤 피해를 입었고, 목표물을 얼마나 빗나갔는지 그림까지 제공하면서 실시간으로 보도한다. 1차 포격은 어디에 집중됐고, 2차 포탄은 어디를 어떻게 타격했다는 식이다. 북한이 다시 해안포 사격을 감행한다면 좌표를 수정하여 정확하게 목표를 타격하라는 군사기밀 누설에 다름 아니다.
정보전이 전투 승패 좌우
국가적 비상상황에서 언론 보도는 면밀하게 계산되고 의도된 노출이어야 한다. 걸프전 초기 언론의 지나친 보도로 미군은 작전에 상당한 지장을 받았다. 실시간으로 군의 작전상황이 언론 보도를 통해 노출됐기 때문이다. 이를 교훈삼아 미군은 이라크전쟁 때는 적절한 언론 통제로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했다. 국가적 비상상황에서 국민의 알 권리와 군사보안 문제가 조화를 이룬 성공적인 사례다. 우리 언론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국회도 일부 문제가 있다. 준전시의 긴급상황임에도 군을 지휘해야 할 수뇌부를 국회에 불러 경과보고나 잘잘못을 논하는 모습은 답답하기까지 하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군 수뇌부가 국회 답변 문구 작성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긴급한 상황이 정리된 뒤 브리핑을 해도 늦지 않다. 더욱이 국방부 장관이 상황 설명을 이유로 아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체 대응포 중 몇 대가 고장 나서 사격을 하지 못했다는 식의 얘기는 장병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군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다.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만을 위해 군사기밀까지 경쟁적으로 누설하는 것은 국익은 물론 문제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익과 알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언론의 성숙한 보도 자세가 요구된다.
지금은 정보전쟁 시대다. 아군의 역추적 대응 포병화력이 일시적으로 침묵했던 게 북한군의 전자전 때문이라는 보도도 있다. 정보전이 전투의 승패를 결정하는 시기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군은 지나치게 국민을 의식하여 긴급상황에 대한 우선 조치보다 국민의 여론을 신경 쓰는 처지가 됐다. 신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언급처럼 “너무 오랫동안 전투를 겪지 않은 평시 군대가 되어, 관리부대로 전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익 고려한 보도 바람직
국가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적 비상시국에는 정부와 언론, 여야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북한은 우리의 감청을 고려하여 도발 이전부터 철저하게 유선 통화로 군사기밀을 유지하는데, 우리는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이 우리 군과 수뇌부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북한 정권이 우리 군과 정부의 상황을 손바닥 보듯 하는 동안 북한군의 동태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알 권리를 내세워 경쟁적으로 군사기밀을 누설하고 있다.
현대전은 정보전이고 전쟁의 승패는 누가 적의 기밀에 먼저 접근하느냐로 결정된다.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국익을 고려하지 않는 보도는 국론을 분열시키고, 적을 이롭게 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영옥 경기대 국제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