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송세영] 부자급식 vs 서민감세

입력 2010-12-08 17:43


학교 무상급식이 이렇게 큰 이슈가 될 줄은 예상 못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여당 후보들이 무상급식 공약을 맹공하긴 했지만 ‘학생들에게 좋은 식재료로 만든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자’는 취지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 수사들을 걷어내면 실제로는 ‘현재 재정여건에서 전면 실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정도의 반대논리였을 것이다.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교육감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도 ‘빚을 내서라도 당장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자’고 주장하진 않았다. 제공범위와 시기를 재정상황에 맞춰 조율하면 큰 마찰은 빚어지지 않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양측은 제대로 된 대화도 조율도 없이 파국으로 치달았다. 서울의 경우 시의회는 지난 2일 내년 초등학교, 2012년 중학교에 대해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3일 기자회견을 열어 거세게 반발했고 7일에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나서 오 시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서로 같은 점을 찾기보다는 다른 점만 부각하려는 한국정치의 그릇된 습성도 한몫을 했음이 분명하다. 오 시장과 곽 교육감이 동원한 정치적 수사들을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합리적 토론과 대화의 여지를 막아버리는 선동적 표현들이 대거 등장했다.

오 시장은 무상급식을 비난하면서 ‘복지의 탈을 쓴 망국적 포퓰리즘’ ‘부자급식’이라는 거친 표현들을 사용했다. ‘망국적’이라는 표현부터가 과장이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생각해도 1년에 수천억원 들여 무상급식 한다고 나라가 거덜 날 것 같진 않다. 이런 식의 정책이 누적되면 언젠가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취지라 해도 비약이 심하다. 우리의 복지 수준은 과잉을 걱정하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포퓰리즘’은 소수 집권세력이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해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행태를 뜻한다. 따라서 정치인들이 대중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내놓는다 해서 포퓰리즘이라 비난하는 건 정확한 어법이 아니다. 포퓰리즘을 함부로 들이대면 이명박 정부 들어서 새로 도입하거나 확대한 복지정책들도 대부분 같은 혐의를 덮어쓰게 된다. 이들 중에는 무상급식을 뛰어넘는 규모의 복지사업들도 적지 않다.

‘부자급식’은 ‘부자감세’에서 따온 말이 아닐까 싶은데 자충수가 될 공산이 크다. ‘부잣집 아이들에게까지 왜 공짜로 점심을 줘야 하느냐’는 식의 논리를 들이대면 현 정부에서 실시 중인 복지나 교육정책들도 일부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 ‘부잣집 아이들에게는 무상교육 폐지하고 수업료 받을 거냐’ ‘지하철 적자가 산더미인데 왜 부자 노인들에게도 지하철을 공짜로 태워주느냐’는 식의 반론이 이어지면 버틸 재간이 없다.

곽 교육감이 무상급식을 ‘서민감세’라고 표현한 것도 적절치 못했다. 오 시장의 ‘부자급식’에 맞서려고 급조한 인상이 짙은데, ‘학교 무상급식은 보편적 교육복지의 일환’이라는 본인의 주장과도 배치된다.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라면 전면 무상급식 대신 오 시장 측 논리대로 서민층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게 옳다.

오 시장의 주장 중에서는 학부모들이 무상급식보다 공교육 개선이나 사교육비 해결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에 더 공감이 간다. 학생 두 명이 있는 가정의 경우 1년에 급식비로 90만원 정도를 지출한다는데, 한 달에 사교육비로만 90만원 이상 쓰는 가정도 적지 않다.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토록 규정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충실한 것이라는 곽 교육감의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다. 급식도 학교생활의 일부분인데 교육은 공짜지만 밥은 아니라는 식의 논리는 옹색하다.

양쪽의 의도가 순수하다면 이 정도 공감대만 있어도 대화와 합의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흘러가는 양상은 대결 일변도다. 차기 대선에 대비한 기선제압용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도는 모양인데 이건 정말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송세영 사회부 차장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