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대통령의 1박4일 외국 출장
입력 2010-12-08 17:42
군사정부 시절 대통령의 외국 방문은 꽤 여유가 있었다. 일정을 느슨하게 잡아 대통령에게 정신적, 육체적 부담이 되지 않도록 했다. 미주(美洲)를 방문할 경우 돌아오면서 하와이에 들러 하루 쉬었다 귀국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정상외교를 하는 대통령의 외국 출장조차 ‘외유(外遊)’라고 부른 것은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대통령의 외국 방문이 강행군으로 바뀐 것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다. 매일 새벽 조깅으로 건강을 다지던 김 대통령은 1995년 3월, 13박14일 일정으로 유럽 6개국을 순방했다. 김 대통령은 서울을 떠나 13시간30분 만에 프랑스 파리에 도착, 여장을 푼 뒤 불과 1시간 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시간으로 새벽 2시였다.
강행군은 김대중 대통령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1999년 7월, 미국과 캐나다를 방문하면서 출국과 귀국 날짜를 뺀 4일 동안 무려 36개 행사를 소화했다. 14시간 비행 후 워싱턴에 도착한 김 대통령은 2시간이 지나면서부터 공식 일정에 들어갔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오찬, 정상회담,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 접견, 특파원간담회, 동포간담회 등의 일정을 마무리한 시간은 오후 6시45분, 한국시간으로 오전 7시45분이었다. 하룻밤을 꼬박 새며 일한 셈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 역시 강행군을 마다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2005년 5월 워싱턴을 방문,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오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한 뒤 곧바로 귀국길에 올랐다. 오갈 때 특별기에서 잠을 자는 1박3일 출장이었다. 역대 대통령의 미국 방문 가운데 최단시간 기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방문길에 올랐다. 주말 괌, 사이판 여행객처럼 1박4일 일정이다. 당초 8일 오전 출발해 11일 오후 귀국하는 3박4일 일정이었으나 북의 연평도 공격과 추가도발 협박 등을 감안해 8일 밤늦게 출발해 11일 새벽 귀국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만 하룻밤 자고 공군1호기에서 이틀 밤을 보낸다.
이 대통령으로선 안보비상 시기에 나라를 비우는 데 신경이 많이 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미리 약속된 방문을 취소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대통령이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 하더라도 69세 연령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