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학의 대가' 박영신 연세대 명예교수, 삶과 신앙을 말하다
입력 2010-12-08 17:05
나는 기독교의 진수는 초월의 능력에 있다고 믿는다. 모든 것 밖에, 모든 것을 넘어서고, 모든 것에서 떨어져 있는 하나님의 속성, 그 초월성에 기독교의 핵심이 놓여 있다고 보는 것이다. 초월성이란 이 세상을 방관하고 저 세상만을 생각하는 내세신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집착을 돌파하는 믿음이다. 그 초월의 힘이 조선 사회를 뒤집었고, 한국 현대사의 초석을 담당했다. 기독교는 초월성의 믿음에 더하여 모든 것을 넘어서 질문하고 도전하고 바꿀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해 주었다. 오늘날 이 땅의 기독교가 되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 초월성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초월성은 나의 믿음과 삶을 떠받치는 근간이고 지금 내가 목회를 하고 시민운동을 하는 이유다.
나는 경북 문경에서 목사 가정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곳은 문경새재가 바라보이는 아주 조그만 시골 동네였다. 몰락한 양반 가문이 경남 밀양에서 쫓기다시피 이주하다가 정착한 곳이 그 동네였다. 다행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리실 때 기독교인이 돼 4대째 신앙 가문을 이어오고 있었다. 아버지도 그 영향으로 신학교를 가셨다. 어린 시절을 문경에서 보내는 동안 기독교는 내 생활과 의식을 완전히 지배했다.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게 일상이었다. 예배 후엔 가족들이 둘러앉아 얘기를 나눴는데, 성경 인물, 성경 이야기 등 주로 성경에 대한 것이었다. 성경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는 건 내게 너무나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오히려 성경이 아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그때 교회 전도사를 하셨다. 가정 형편은 빤했다. 하지만 가난했으나 물질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았다. 오히려 물질 그 너머의 신앙세계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이해하고 즐겼던 것 같다. “가난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난 때문에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 가난 속에서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가 언제나 집안의 이야기 주제였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세계는 가난과 상관없이 내 마음과 삶 속에 내면화됐다.
작은 시골 동네이다 보니 여유 있는 사람보다는 여유 없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어릴 적 집에는 늘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와 식탁을 함께했다. 같이 호박죽도 먹고, 텃밭에 심은 배추도 나눠먹었다.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과 같이 식탁을 나누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상이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평생 약자에 관심을 갖게 한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됐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 그늘에 가려진 사람, 사회에서 짓밟힌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언제나 지켜가야 하는 게 우리 집안의 자연스런 분위기였다.
◇약력=1938년 경북 문경 출생/ 연세대 교육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 미국 예일대 종교학 석사, 버클리대 사회학 박사/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현상과 인식’ 편집인, 한국사회이론학회 초대회장, 한국사회운동학회 초대회장, 노인시민연대 공동대표, 실천신학대학원 석좌교수 역임/ 현재 녹색연합 상임대표, 예람교회 공동목사, 재단법인 목민 이사장/ 저서로는 ‘현대 한국사회와 기독교’ ‘새로 쓴 변동의 사회학’ 등이 있다.
정리=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