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영신 (1) 가난마저 여유롭던 ‘4대째 신앙 가문’
입력 2010-12-08 17:31
나는 기독교의 진수는 초월의 능력에 있다고 믿는다. 모든 것 밖에, 모든 것을 넘어서고, 모든 것에서 떨어져 있는 하나님의 속성, 그 초월성에 기독교의 핵심이 놓여 있다고 보는 것이다. 초월성이란 이 세상을 방관하고 저 세상만을 생각하는 내세신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집착을 돌파하는 믿음이다. 그 초월의 힘이 조선 사회를 뒤집었고, 한국 현대사의 초석을 담당했다. 기독교는 초월성의 믿음에 더하여 모든 것을 넘어서 질문하고 도전하고 바꿀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해 주었다. 오늘날 이 땅의 기독교가 되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 초월성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초월성은 나의 믿음과 삶을 떠받치는 근간이고 지금 내가 목회를 하고 시민운동을 하는 이유다.
나는 경북 문경에서 목사 가정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곳은 문경새재가 바라보이는 아주 조그만 시골 동네였다. 몰락한 양반 가문이 경남 밀양에서 쫓기다시피 이주하다가 정착한 곳이 그 동네였다. 다행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리실 때 기독교인이 돼 4대째 신앙 가문을 이어오고 있었다. 아버지도 그 영향으로 신학교를 가셨다. 어린 시절을 문경에서 보내는 동안 기독교는 내 생활과 의식을 완전히 지배했다.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게 일상이었다. 예배 후엔 가족들이 둘러앉아 얘기를 나눴는데, 성경 인물, 성경 이야기 등 주로 성경에 대한 것이었다. 성경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는 건 내게 너무나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오히려 성경이 아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그때 교회 전도사를 하셨다. 가정 형편은 빤했다. 하지만 가난했으나 물질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았다. 오히려 물질 그 너머의 신앙세계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이해하고 즐겼던 것 같다. “가난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난 때문에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 가난 속에서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가 언제나 집안의 이야기 주제였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세계는 가난과 상관없이 내 마음과 삶 속에 내면화됐다.
작은 시골 동네이다 보니 여유 있는 사람보다는 여유 없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어릴 적 집에는 늘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와 식탁을 함께했다. 같이 호박죽도 먹고, 텃밭에 심은 배추도 나눠먹었다.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과 같이 식탁을 나누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상이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 그늘에 가려진 사람, 사회에서 짓밟힌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언제나 지켜가야 하는 게 우리 집안의 자연스런 분위기였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평생 약자에 관심을 갖게 한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됐다.
◇약력=1938년 경북 문경 출생. 연세대 교육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 미국 예일대 종교학 석사, 버클리대 사회학 박사.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현상과 인식’ 편집인, 한국사회이론학회 초대회장, 한국사회운동학회 초대회장, 노인시민연대 공동대표, 실천신학대학원 석좌교수 역임. 현재 녹색연합 상임대표, 예람교회 공동목사, 재단법인 목민 이사장. 저서로는 ‘현대 한국사회와 기독교’ ‘새로 쓴 변동의 사회학’
정리=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