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신삼국지-갈등 요인 분석] 중국 vs 일본, 야스쿠니신사 참배 관련 대립

입력 2010-12-08 16:12

중·일간 갈등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뿌리를 둔 한·일간 갈등과 유사하다. 1931년 동북지방에 세워진 일본의 괴뢰국 ‘만주국’을 비롯해 1937년 중·일전쟁 당시 난징(南京)대학살 등으로 인해 중국은 한국 못지않게 일본에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1972년 국교회복을 계기로 협력 관계를 맺었지만 과거사 인식과 영토문제 등에 있어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우선 일본의 역사 왜곡은 양국 사이에 여러 차례 분란의 요인이었다. 1982년 일본의 침략을 합리화한 내용이 역사 교과서에 실린 게 확인되면서 외교문제로 처음 비화됐다. 중국은 한국과 함께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중국에선 일본이 난징대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데 대한 반일시위가 잇따랐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도 중·일간 ‘뜨거운 감자’이다. 전몰 군인을 추도하는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패전 후 A급 전범 14명을 1978년 비밀리에 합사한 곳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가 85년 일본 총리로선 사상 처음 이곳을 공식 참배했다. 그는 중국과 한국의 강한 반발을 받았고, 이듬해부터 참배를 중단했다.

하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2001년 취임한 해부터 2006년 퇴임한 해까지 매년 이곳을 찾았다. 이 때문에 중국은 고이즈미 총리의 중국 방문을 거부하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 9월 집권한 민주당 정권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에 이어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도 외교 관계를 고려해 참배하지 않고 있다.

최근 양국간 갈등 현안은 영토문제다.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 영유권 분쟁으로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만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이 열도가 함께 할양돼 오키나와에 편입됐다.

지난 9월 센카쿠열도 부근에서 발생한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의 충돌 사건은 양국간 분쟁의 정점을 보여줬다. 중국은 일본이 선원들을 억류하자 자국민의 일본 관광을 취소하고 정상회담도 거부했다. 일본에 치명적인 희토류(희귀금속류) 수출을 중단하는 등 그야말로 ‘융단폭격’을 가해 일본을 굴복시켰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