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신 삼국지-협력해야 하는 이유] 갈등을 넘어 미래로… “3국 손잡으면 세계 선도”

입력 2010-12-08 16:44


한·중·일 3국의 역사는 갈등의 역사다. 최근에도 중국과 일본이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천안함·연평도 도발 등을 놓고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한·일 관계에서 독도와 종군위안부 문제 등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3국 관계는 영토, 역사, 자원 등 다양한 갈등요소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러나 3국은 협력을 위한 끈을 놓지 않고 있다. 3국이 사사건건 대립하면서도 지역 공동체로의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그 과실이 크기 때문이다.

◇“3국의 스탠더드가 글로벌 스탠더드”=3국을 합할 경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유럽연합(EU)에 이어 경제규모가 세번째가 된다.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 교역량의 5분의 1, 국내총생산(GDP)의 6분의 1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비중은 앞으로 점점 커질 것이 분명하다. 3국이 뭉치면 전 세계를 선도해 나갈 동력을 얻게 되는 셈이다.

외교부 당국자 지난 5월 29일 제주 정상회의에서 발표된 ‘표준협력 공동성명’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공동성명의 내용은 단순 공산품에서 최첨단 제품까지 각종 국제표준을 세우는데 3국이 협력을 강화해 나가자는 내용이다. 3국 정부, 산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표준협력 기반을 구축해보자는 것이다. 경제규모로는 NAFTA, EU에 이어 세번째지만 3국 산업이 상호보완적인 요소가 많아 협력의 효과가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3국 산업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사만 된다면 미국 EU 일본 등이 행사하던 주도권을 일시에 3국으로 가져올 수 있다.

◇서로가 필요한 속사정=G2(미국·중국)로 성장한 중국은 미국을 위시한 서구권의 강력한 견제를 받고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 각국과 협력을 강화하며 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해 남중국해로 중국이 진출하는 것을 막고 있으며,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일본을 지원하고 있다. 한반도 역시 북한이라는 골칫거리 때문에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뿐만 아니라 환율 등 경제 분야에서도 미국과 서방권의 압력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으로서는 지역 공동체를 통해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견제를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버리고 서구열강을 지향한다)를 추구하며 100년 가까이 아시아를 무시해온 일본은 국력 쇠퇴기를 맞아 아시아 국가들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과 중국은 매력적이다. 일본은 아세안 전체와 비슷한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는 한국과 우선적으로 FTA를 맺어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어 한다.

한국 역시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중국과 일본의 협력이 절실하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사태에서 나타났듯 한·미 동맹만으로는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데 열을 올릴 전망이다. 이를 위해 대중국 외교력을 제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3국 공동체를 위한 자동차=협력 사무국, 로드맵=비전 2020=3국 정부는 현재 17개 장관급 회의를 포함해 50여개 정부 간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100개 이상의 공동사업을 실시 중이다. 정점에 3국 정상회의가 있다.

3국 정상회의의 뿌리는 1999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로 3국 정상이 따로 모여 회담을 가졌다. 이후 아세안+3 정상회의가 열리면 3국은 별도로 자리를 마련했다. 2008년부터는 아세안+3 회의와 상관없이 일본, 중국, 한국 순으로 돌아가면서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3국 정상은 아세안+3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기간 중 10여 차례, 3국이 별도로 마련한 정상회의에서 3차례 얼굴을 마주했다.

정부는 올해 안에 중국, 일본 정부와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 설치를 위한 협정문 서명식을 가질 계획이다. 협력 사무국은 2008년부터 정례화된 3국 정상회의를 위한 상설 기구다. 지난 5월 제주도에서 열린 3국 정상회의에서 서울에 설치키로 공식 결정됐다. 사무국은 11년 동안 이어져온 3국 협력의 결정체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협정문에 각국이 서명하면 내년 초 국회비준 절차를 거쳐 내년 상반기에는 협력 사무국 설치를 완료할 계획”이라며 “중국, 일본 당국과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력 사무국은 각국 외교관 3∼4명과 일반 직원 등 20여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조직 규모는 작지만 3국의 다양한 의제가 녹아드는 ‘용광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제주 정상회의에서는 이외에도 ‘3국 협력 비전 2020’이라는 문서를 채택했다. 비전 2020에는 3국의 10년 뒤 미래상이 제시돼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이어온 3국 정상회의를 통해 협력의 기틀이 마련됐다고 보고 앞으로 10년 동안 관계를 심화시켜 나가자는 의지가 담겨 있다. 비전 2020은 41개 항목으로 구성됐고 치안당국 간 협력강화, 마약퇴치, 3국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및 경제통합 나아가 군사 분야 협력 등이 포함돼 있다

◇쉬운 일부터 차근차근=3국 협력은 취약한 구조다. 우호 협력 분위기를 한번에 무산시킬 수 있는 민감한 사안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일본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에 한·중이 반발, 3국 정상회의가 무산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3국 협력 사무국에서는 정치, 안보와 같이 첨예한 이슈보다 주로 경제 학술 인적교류와 같은 소프트한 의제부터 먼저 다뤄나갈 계획”이라면서 “아직 3국 협력이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국 정상이 모이는 자리이므로 첨예한 이슈에 대한 논의도 불가피하다. 이럴 경우 양자 사이에 담판을 하기 어려운 문제를 중간자적 위치에 있는 국가가 중재하는 그림이 나올 수 있다. 갈등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양국이 담판을 짓지 못하더라도 정상이 얼굴을 맞대는 자리이므로 갈등 해결의 단초는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