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신 삼국지-대학입시 시스템] 高3들 大入 올인 닮은 꼴… 하루 12시간씩 ‘열공’
입력 2010-12-08 16:45
수험생은 외롭다. 다른 모든 수험생과 경쟁해야 하고 자신과도 싸워야 한다. 매년 한 번 치르는 대학입학시험에 인생을 걸고 고군분투하는 한국 중국 일본의 고등학교 3학년생을 현지에서 만났다.
◇중국=지난달 25일 오후 12시쯤(현지시각) 중국 베이징 하이뎬(海淀)구 수도사범대학 부속 중·고교. 고교 3학년 교실에서는 중년 남교사가 수업을 진행 중이었다. 칠판은 물리 공식으로 빼곡했다.
몇 분 뒤 점심식사 시간이지만 복도로 새어 나오는 잡담소리는 없었다. 학생 대부분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은 표정이었다. 운동복을 닮은 녹색 교복 차림의 학생 40여명은 교사의 말을 경청했다.
수업 후 식사 시간을 쪼개 만난 고교 3학년생 펑윈거(17)군은 “중국 학생에게 최대 관심사는 대학입학 시험”이라고 했다. “다른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베이징대 의학부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고 싶은데 요즘 성적이 잘 안 나와서 고민이에요.” 외아들인 펑군의 부모는 모두 의사다.
중국은 고교 졸업시험을 치른 학생을 대상으로 대입 시험 ‘가오카오(高考)’를 실시한다. 가오카오는 일반대학교 입학 전국통일고시(普通高等學校招生全國統一考試)의 줄임말이다. 중국 11개 성(省)·시(市)에서 자율 출제하는 가오카오는 중국판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대부분 750점 만점이다.
가오카오는 어문(국어), 수학, 외국어(영어)를 공통으로 하고 지역과 대학 실정에 따라 1∼2개 과목을 추가한다. 베이징에서는 공통 3개 과목에 문과는 지리 역사 정치를, 이과는 물리 화학 생물을 치른다. 산둥성(山東省)에서는 여기에 기술 체육 건강 예술 종합실천 등으로 구성된 기본능력 과목을 더 치른다. 지역에 따라 6∼7월 중 2∼3일에 걸쳐 치러지는 가오카오는 4지 선다형과 주관식이 섞여 있다. 문과는 선다형과 주관식이 절반씩이고 이과는 주관식이 60%로 선다형 40%보다 많다.
내년 6월 7일 베이징시가 주관하는 가오카오를 치르는 펑군에게 남은 시간은 7개월 정도다. “하루에 8개 수업이 있어요. 오전 7시45분 시작하는 수업이 오후 6시쯤 끝나면 대부분 9시30분까지 학교에서 자습해요. 집에 바로 가는 친구도 있는데 걔들도 10시쯤까지 숙제하고 공부하더라고요.”
펑군은 매일 오전 6시쯤 일어나고 오후 11시 이후 잠든다. 정규 수업을 포함한 공부 시간은 12시간 정도다. 우리나라 통계청이 최근 분석한 고3 학생의 평균 공부 시간 11시간3분보다 적지 않다.
중국 초·중학생은 중점학교에 진학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펑군은 전했다. 우리나라 국제중학교나 특수목적고가 명문대 진학의 발판으로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펑군은 “중점학교 진학과 명문대 입학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됐다고 볼 수 있다”며 “초등학생에게는 굉장한 압력”이라고 말했다.
◇일본=일본 고3 학생은 지난 2일 오전 10시30분쯤 일본 도쿄 북쪽 사이타마현(埼玉縣) 호소다고교에서 만났다. 호소다고는 1978년 4월부터 올해 초까지 30년 넘게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온 학교다.
학생들은 단발부터 장발까지 제각각인 머리카락으로 멋을 내 수험생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관심사는 역시 대입이었다. 다만 수영부 배구부 문화부 등 부서 활동을 강조하는 특성 탓에 이 학교 수험생 10명 중 8명은 우리나라 수시 입학 제도와 같은 추천 입학으로 대학에 들어간다. 전교생 700여명의 57%인 400여명이 부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 중 200여명이 운동부다. 일본 전체 대입자의 49.8%인 추천 입학생 비중은 늘고 있는 추세여서 내년 입시에서는 절반을 넘어설 전망이다.
수영부원 나카야마 카에데(中山楓·18)양은 “체육교사가 되고 싶어서 교육대학에 가기로 1학년 때 결정했다”며 “그런데 수영 말고 다른 것은 잘 못해서 교사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일본 고3 학생은 다음달 15·16일 치러지는 대입 시험 ‘대학입시 센터시험’을 한 달여 앞두고 있다. 센터시험은 매년 1월 13일 이후 첫 번째 토·일요일에 실시한다. 과목은 국어 수학 공민(사회) 지리·역사 외국어 등 6개 교과 28개 과목이다. 교과마다 과목을 세분해 선택 폭이 넓다.
이 시험에서 영어는 한국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와 함께 외국어 5개 과목 가운데 선택 과목이다. 센터시험 이후 대부분 대학에서 논술과 면접 등 2차 시험을 치른다는 점은 한국과 닮았다.
수험생은 최대 9개 과목을 응시할 수 있다. 상위권 대학 지원자는 대개 7∼8개, 하위권 대학 지원자는 3∼4개 과목을 선택하는 편이다. 과목마다 100∼200점이고 영어는 듣기평가 50점이 별도다.
나카야마양 등 학생들은 영어를 가장 어려운 과목으로 꼽았다. 히리이와 타쿠야(平岩拓哉·18)군은 “부족한 내용을 공부하려고 과목별로 문제집을 사서 보는데 영어가 5, 6권으로 가장 많다”고 했다.
이들은 오전 7시쯤 일어나 8시까지 등교한다. 오전 8시15분부터 오후 3시10분까지 6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별도 자습 없이 귀가하지만 대부분 집에서 6시간 정도 혼자 공부한다. 학교 수업을 합치면 약 12시간 공부하는 셈이어서 한·중·일 3개국 학생의 학습 시간은 비슷하다.
◇한국=지난 6일 오후 12시20분쯤 서울 창동 서울외고에서 만난 3학년 김우성(18)군은 여유로워 보였다. 김군은 지난달 수능 시험을 치렀다. 요즘 3학년생은 오전 8시 등교해 대입 상담을 받거나 강연을 듣고 오전 10시 귀가한다. 이들이 빠져나간 학교는 외고 지원 원서를 넣으러 온 중3 학부모로 붐볐다.
“수능 시험 전에는 매일 오전 5시50분에 일어났어요. 등교가 7시20분까지였거든요. 학교에선 0교시부터 9교시까지 들으면 오후 5시30분쯤 수업이 끝나요. 그때 저녁식사하고 야간 자습을 시작하죠.”
김군은 “일주일에 두 번씩 요일을 정해 자습 대신 학원에 가는 친구가 많았다”며 “자습 끝나면 오후 10시쯤 되는데 그 시간에 독서실이나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받는 학생도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3 학생은 하루 평균 5.4시간 잔다. 학교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고3 학생은 78.3%였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학생은 45%로 절반에 못 미쳤다.
“수험생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수능 시험은 끝났지만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남았고, 재수하려는 학생은 과연 내년에 점수가 오를지 확신할 수 없잖아요.” 김군은 수능 시험이 끝난 고3 교실 분위기를 ‘가면무도회’ 같다고 했다. “시험에 대한 미련이나 좌절감, 만족감을 남모르게 숨겨놓고 시끌벅적하게 떠들기만 해요. 별 의미 없는 대화나 하면서.”
베이징=글·사진 강창욱 기자 도쿄=최승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