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신 삼국지] 동북아 연대는 미래의 희망이자 기회다

입력 2010-12-08 16:41


특별기고-문정인 연세대 교수

한 나라의 운명은 지정학적, 지경학적 환경에 좌우된다. 유럽과 같이 안보, 경제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지역 협력과 통합을 이룬 곳에서는 개별 국가의 평화와 번영 가능성이 높다. 반면, 아프리카나 중동 같은 지역에서는 갈등과 대립, 빈곤과 저개발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역의 개념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중국의 경우, 지역적 관심사는 아시아 전역에 있다. 중국의 국경이 동북아, 서북아, 동남아, 서남아 걸쳐 광범위하게 펼쳐있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은 동아시아를 중시한다. 해양국가로서 동아시아가 일차적인 생존공간인 탓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동북아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동북아에 달려있다. 왜 동북아일까?

무엇보다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우리 생존에 사활적이기 때문이다. 열강들의 약육강식, 식민지 지배와 예속, 민족 분단, 전쟁이라는 과거의 동북아가 우리의 집단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한 과거가 미래에 재현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새로운 세계질서의 도래에도, 안보 딜레마에 빠져있는 게 현실 아닌가.

최근 한반도는 동북아 안보를 위협하는 태풍의 눈으로 대두되고 있다. 남북한 재래식 군사 충돌은 주변 4강이 개입하는 지역 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가 역내 평화와 안보를 위협한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실패할 경우, 우리는 핵을 가진 북한과 위태롭게 공존해야 하고, 역내 핵 도미노 현상과 핵 군비 경쟁에 대처 해나가야 한다. 더구나 북핵 시설에 대한 군사행동(예를 들어, 정밀 타격)은 대규모 군사충돌을 야기할 수도 있다.

역내 미래 안보지형에 대한 전략적 불확실성도 심각한 문제다. 한·미·일 남방 3각축과 중·러·북 북방 3각축의 대립구도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역동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으로 볼 때 동북아는 중차대하다. 한·중·일 3개국은 2009년 현재 세계 GDP의 20.9%, 세계 인구의 23.6%, 세계무역량의 15.2%, 세계 외환보유고의 38.1%를 차지하고 있다. 동북아는 이미 세계경제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13억 인구의 거대 시장을 가진 중국은 세계 최대의 생산공장으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아직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일본은 최첨단 기술과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범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유일한 예외는 북한이다. 그러나 북한 역시 개혁과 개방을 통해 나라 경제를 활성화시킬 경우, 우리의 번영에 핵심적 이익으로 부각될 수 있다. 이처럼 동북아는 우리의 미래 경제에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주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동북아는 사회문화적으로도 우리에게 소중하다. 한·중·일은 인적·문화적 교류 협력의 확대를 통해 연대의식을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역내 관광객의 증대, 유학생 교류의 확대, 각종 NGO와 지방정부 수준의 교류 협력 등은 3국 간 인적·문화적 연계망 구축에 공헌해 오고 있다. 게다가 ‘한류’로 불리는 한국 대중문화의 폭발적 인기나 영화, 패션 분야 등에서 나타나는 중국 및 일본문화의 확산은 역내 문화교류의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

어두운 면도 있다. 폐쇄적 민족주의의 대두와 그에 따른 상호불신의 심화는 역내 협력과 전략적 안정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역사교과서 개정 등이 한·일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가 하면, 한·중관계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왜곡으로 삐걱이고 있다.

동북아 국가들과의 협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적 책무이다. 우리의 사활이 달려있는 문제다. 중국이 뜬다고 중국에 편승할 수 없는 일이며, 그렇다고 중국의 부상을 우려한 나머지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 매진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역내 안보환경을 감안할 때, 배타적 양자 동맹과 폐쇄적 국가주의를 축으로 한 종래의 안보전략만으로는 평화와 번영을 담보할 수 없다. 자강의 능력을 갖추고 균세의 외교적 성찰로 반목과 대립의 지역질서를 협력과 통합의 다자주의 지역질서로 전환시켜야만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 보장될 수 있다.

◆문정인 교수 △1951년 제주 △연세대 철학과 △미국 메릴랜드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연세대 통일연구원장·국제대학원장 △제1·2차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직속 국방발전자문회의 위원 △국제교류재단 이사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