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편 영화장면 짜깁기… 영상 예술로 승화
입력 2010-12-07 21:34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처럼 이 작품을 글과 말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블랙박스에서 9일부터 열리는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소리를 보는 경험’은 눈으로 꼭 봐야 100% 이해할 수 있는 영상 전시다. 미국 출신의 사운드 아티스트 마클레이(55)가 세계 각국의 영화 장면들을 편집해 세 가지 작품을 선보인다.
1995년작 ‘전화’는 할리우드 영화 속 통화 장면을 짜깁기한 작품이다. 중절모를 쓴 신사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다이얼을 돌리는 장면으로 시작해 전화벨이 울리는 장면, 수화기를 드는 장면, 전화를 끊는 장면까지 7분30초 동안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사랑해” “무슨 소리야” 등 영화 속 전혀 상관없는 통화 장면들이 교묘하게 하나의 이야기로 엮인다.
14분11초짜리 2005년작 ‘비디오 사중주’는 전시 제목대로 소리를 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일렬로 설치된 4개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700여개 영화에서 골라낸 음악이나 소리 장면이 각각 상영된다. 트럼펫을 불거나 발을 구르고 노래를 부르는 등 4개의 장면 속에서 흘러나오는 각각의 소리는 얼핏 부조화한 듯하면서도 4중주단의 연주처럼 화음을 만들어낸다.
지난 10월 영국에서 처음 선보인 신작 ‘시계’는 5000편 가량의 영화에서 시계가 등장하는 장면만을 따로 모았다. 24시간 상영되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시계 속 시간은 실제 현실의 시간과 일치하도록 맞췄다. 한국영화는 ‘올드보이’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등이 포함됐다. ‘올드보이’는 주인공 최민식이 15년 동안 잡혀있다 풀려나 시계를 보는 순간이 오후 2시30분으로 같은 시간에 상영된다.
아이디어부터 완성까지 5년이 걸렸다는 이 작품은 무심히 흐르는 시간 가운데 놓여있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열혈 영화팬이라면 세 작품에 등장하는 영화 제목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세계적인 설계자 렘 쿨하스가 미래적 전시공간으로 디자인한 리움 블랙박스 프로젝트의 첫 전시로 내년 2월 13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 일반 3000원, 초중고생 2000원(02-2014-690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