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낙장불입과 파워게임

입력 2010-12-07 17:57

호불호를 떠나 화투놀이의 게임규칙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번 내놓은 패는 거둬들일 수 없다는 낙장불입(落張不入)의 계(戒). 바둑에서도 같은 뜻으로 일수불퇴(一手不退)란 말을 쓴다. 필부들 사이에 이 룰이 지켜지지 않아 가끔 멱살잡이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시정(市井)의 게임규칙이 이럴진대 국가 간 협상에서는 더 말할 나위 없겠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아니다. 게임이야 지면 그뿐이고 하다못해 내기 바둑에서 지더라도 술 한 잔, 밥 한 끼 사면 그만이지만 국익을 따지는 입장에선 사뭇 다르다. 일수불퇴의 룰보다 파워게임이 주도할 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딱 그 격이다. 한·미 FTA 협상 타결 선언은 원래 2007년 4월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바로 노동·환경 분야에 대해 추가 협의를 요구해, 협상은 다시 파기 직전으로 떠밀려갔다. 곡절 끝에 협상선언문은 그해 6월에야 공식 서명됐다.

미국은 그마저도 양에 안 차 했다. 특히 자동차업계, 쇠고기 수출업계 등의 불만이 컸다. 오바마 정권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침체에 빠진 미국 경기를 회생시키기 위한 실마리를 수출확대에서 찾겠다고 선포하면서 한국 시장 개방 확대를 전제로 한 재협상은 기정사실이 됐다.

내기 게임에서 돈을 잃은 이가 억지를 부리면서 자신이 딸 때까지 패를 계속 돌려야 한다는 우격다짐과 다를 바 없다. 이게 이번 추가협상이 벌어진 배경이다. 그것은 철저한 파워게임의 논리였다. 추가협상의 내용에 대해 한국이 미국에 말로 주고 되로 받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치다.

추가협상을 포함한 한·미 FTA 협상에 대한 국회 비준을 앞두고 정치권 공방이 치열하다. 당연한 반응이다. 다만 세간의 화투놀이나, 내기 바둑의 룰을 앞세워 평가해선 안 될 것이다. 어차피 FTA는 내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자극이기에 피해 그 자체보다 대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미 FTA는 정부가 강조하는 것만큼 경제효과가 뛰어날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한 번 마무리한 협상에 대해 미국이 두 번이나 이의를 제기하고 내용을 수정하자고 덤빈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제역량이나 수출경쟁력이 수준 이상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 간 협상에서, 그것도 경제교류 확대를 위한 논의에서 파워게임이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점은 씁쓸하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비롯, 우리가 극복해야 할 벽은 아직 지천이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