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이상훈] 韓日병합 100년이 남긴 것

입력 2010-12-07 17:57


한일병합 100년이 되는 올해 한·일 양국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역사관련 학술대회를 비롯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 단체들의 행사가 지속적으로 개최됐다. 한국 언론은 물론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NHK 등 일본 매스미디어도 특집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관점에서 연유한 것이겠지만 양국의 관심에는 불균형이 존재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병합 100년이 한국에는 커다란 주제였지만, 일본은 상대적으로 무관심했고 소홀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일본 시민사회에서도 진보지식인들의 주도로 한일병합의 강제·불법성에 대한 한일공동선언이나 지역별 집회 등이 열리긴 했지만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다만 일본에서 역사학자를 중심으로 활발히 발표된 내용을 보면 관점의 변화가 감지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즉 병합 100년을 계기로 식민지화 및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피지배 민중의 시점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흐름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것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묻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중의 눈으로 보려는 흐름

2010년 초 아시아중시 외교정책을 표방한 민주당 정권으로 인해 한·일관계가 상당부분 개선되거나 진전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낙관적인 예측이 있었다. 실제로 독도문제나 역사인식에 대한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갈등 요소를 한·일 정부가 유연하게 관리함으로써 2010년은 한·일관계에 있어서 조용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문제는 병합 100년이 오히려 조용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병합 100년을 계기로 앞으로의 100년을 전망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한 해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첫째는 병합 100년이 정부 레벨에서 본다면 일본 정국의 불안으로 인해 한·일관계의 진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민주당 정권의 불안정으로 한·일 양국 간의 협력사업 개발이나 추진 등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일 간에 거의 ‘약속’에 가까운 현안이었던 영주외국인 지방참정권 부여문제가 야당의 반대라기보다는 연립여당 내의 반대론, 신중론 등에 의해 실현되지 못했다는 게 하나의 예이다.

물론 평가가 나뉘기는 하지만 간 총리 담화는 일본 내의 정치상황을 고려한다면 의미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하여 민주당이 정권을 획득한 2009년과 달리 2010년의 민주당 정권은 하토야마 내각의 혼란, 정치자금을 둘러싼 ‘오자와 문제’의 분출, 당 대표 선거 시의 격렬한 대립이라는 상황하에서 이미 ‘약한 정권’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민주당 정권에 의한 간 총리의 담화 발표는 그 정치적 동원능력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관한 신중론이나 견제론을 돌파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돌파력이 다른 분야에서도 발휘될 수 있을 것인가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미래 설계 부족해 아쉬움

둘째, 병합 100년이 민간 레벨에서 본다면 단지 일상의 연장선이었고, 밝은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한 해였다고 총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한·일, 그리고 동아시아에 있어서 다양한 과제가 산적해 있는 현시점에서 과거 청산에 중점을 두고 개최된 행사만으로는 역사문제의 재인식이나 새로운 공통과제의 제기라는 미래지향적 방향 설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문제 해결에 대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건설적인 미래지향적 관계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해야 하며, 구체적인 협력관계의 설계 및 실천이 요구된다. 이것이 병합 100년인 2010년 말에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상훈 한국외대 일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