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주리] 라디오가 있는 풍경

입력 2010-12-07 17:58


새벽녘에 깨어 전날 밤 켜둔 라디오를 듣습니다. 라디오는 내게 현실세계와 교감하게 하는 소중한 물건입니다. 스스럼없는 친구처럼 새벽부터 종알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문득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라디오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텔레비전과는 달라서 왠지 라디오는 나 하나만을 위해서 들려오는 위로의 목소리처럼 느껴집니다.

늦게까지 그림을 그리다가 잠자리에 들어 라디오를 켜면, 그 시간에도 라디오는 밤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틀어줍니다. 새벽에 재방송들을 해주는 케이블 텔레비전과는 전혀 다른 맞춤 위로 시스템이지요. 새벽에 두 시간 동안 낯익은 7080 노래들을 신청하는 대로 세 곡 네 곡씩 다 들려주는 프로도 있습니다. 노래를 신청하는 사람의 사연도 들려줍니다. 새벽에 물건 배달을 하면서 노래를 듣는 사람, 시험공부를 하면서, 밤일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 프로를 향해 마음을 열고 있는 외롭지 않은 하나의 연결고리일지도 모릅니다.

노래를 들으며 조금씩 잠 속으로 빠져 듭니다. 어릴 적 꿈 중 하나는 라디오 디스크자키였어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외로운 영혼에게 다정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아름다운 음악을 선물해주는 존재란 어쩌면 정신과 의사보다 유능한 우울증 치료자가 아닐는지요.

가끔은 여기저기 사이클을 돌리기도 합니다. 한·미 FTA에 관해 누군가 열변을 토합니다. 인천에 가족을 두고 생업을 위해 연평도로 돌아간 기러기 아빠들 소식도 들려옵니다. 무상급식에 관해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줍니다. 세상 돌아가는 소리들과 낯익은 목소리들과 아름다운 음악들을 고루 듣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세상이라는 거대한 기계를 돌리는 작은 톱니바퀴가 된 기분입니다.

산다는 건 매 순간 아름다운 시작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던 옥수수 빵의 냄새가 떠오릅니다. 친구의 옥수수 빵과 도시락을 바꿔먹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우리들의 도시락은 언제나 불공평했습니다. 화려한 부잣집 아이들 도시락과 김치만 싸오는 아이들 도시락, 그나마도 싸오지 못하던 아이들…. 하지만 누구도 도시락의 내용으로 주눅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십 년이 흐른 지금, 화려한 도시락을 싸오던 아이가 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불공평하다 해도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자본주의의 장점을 사랑합니다. 언론의 자유, 여행의 자유, 이주와 이민의 자유, 전쟁만 없다면 분명 세상은 멋진 신세계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연평도 포격은 북한 잘못이 아니라 남한 잘못이라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다니 기막힌 일입니다. 2010년의 겨울, 여전히 안타까운 건 우리가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을 듣듯 마음과 귀를 열고 하나의 마음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것이겠지요. 우선 우리의 마음이 하나가 된다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도 어느 날엔가는 마음과 귀를 열는지요.

황주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