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경제] “네팔산 착한 커피의 향기 더 멀리 퍼져 나갔으면…”
입력 2010-12-07 22:06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네팔의 말레마을. 11가구가 전부인 이 작은 마을의 주민들은 커피로 생계를 잇고 있다. 봄이 오면 마을사람들은 산속을 헤쳐 빨갛게 익은 커피 열매를 직접 손으로 딴다. 껍질을 벗겨내면 나오는 노란 씨앗을 말린 것이 생두. 마을 사람들은 생두를 팔기 위해 가파른 산길을 따라 며칠이 걸릴지 모를 고된 길을 떠난다.’
네팔 주민들이 커피를 손으로 직접 따 판매하기까지 여정을 보여준 다큐멘터리 ‘히말라야 커피로드’의 한 장면이다. 지난 7월 EBS에서 방송된 이 다큐멘터리는 한 사람의 삶을 뒤흔들었다. 4년차 바리스타 민해미(29·여)씨는 어느 주말 ‘히말라야 커피로드’를 보고 서울 삼청동의 잘 나가는 커피전문점 바리스타를 그만뒀다. 그저 커피가 좋아서 바리스타가 됐지만 처음으로 ‘커피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민씨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커피콩 한 알 한 알에 정성을 담는 네팔 주민들을 떠올렸다. 힘겹게 수확한 커피콩이 싼 값에 팔리고, 대기업이 대량 생산하는 커피에 밀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민씨는 이후 이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커피마을의 자존심을 지키며 유기농으로 커피를 만드는 이들을 지원하는 공정무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민씨는 지난 8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하는 서울 안국동 ‘아름다운커피’ 매니저로 새 삶을 시작했다.
지난 6일 안국동 ‘아름다운커피’ 1호점에서 만난 민씨는 공정무역 커피에 관심을 가지면서 바리스타로서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야기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원두로 커피를 만들 때 커피 한 잔은 별 것 아니었어요. 좋은 향과 풍부한 맛이 나는 커피를 만드는 것이 제 일이었지요. 하지만 커피콩 하나하나를 소중히 대하는 네팔 주민들의 삶이 저를 바꿔놓았습니다. 4년 만에 드디어 바리스타로서 기본적인 생각을 갖게 된 것이죠. 커피콩을 수확하는 농부의 마음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민씨는 지난여름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 공정무역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민씨 주변에도 공정무역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름다운가게 공정무역사업부 엄소희 간사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은 정도는 아니다”며 “올해 초 조사 결과 20% 정도가 공정무역에 대해 들어봤고, 이 가운데 절반 정도만 공정무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공정무역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10명 중 한 명 꼴인 셈이다. 우리나라에 공정무역 활동이 시작된 것은 2002년부터다. 아름다운가게에서 공정무역 수공예품을 판매하면서 공정무역 개념이 도입됐다. 이후 두레생협, 아이쿱생협 등에서 공정무역 제품들을 수입·판매하면서 저변이 확대됐다. 2008년 안국동에 아름다운커피 1호점이 생기고 커피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커피 부문에서 공정무역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품목에서는 아직 공정무역 제품들에 대한 인식이 미미한 수준이다.
공정무역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줘서 돕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그들의 노동력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량 생산과 이윤 추구에 집중된 기업의 동참 없이 공정무역은 발전할 수 없다. 그리고 기업을 바꾸는 힘은 소비자에게 있다.
한국공정무역연합 박창순 대표는 “공정무역이 확대되려면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공정무역의 의미와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뿌리내리려면 캠페인처럼 일시적인 방법으로는 안 되고 교육을 통한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의 인식이 바뀌고 정부와 기업이 동참했을 때 공정무역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무역에 삶을 맡긴 민씨도 공정무역이 확산되려면 생활 속에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공정무역 커피는 생산과정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특별하지만 이 점을 강조하기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평범하게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맛있고 향기로운 커피를 찾았더니 공정무역 제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공정무역을 기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 Key Word 공정무역
커피, 초콜릿, 축구공 등을 생산하는 제3세계 주민들에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몫을 지불하는 무역 형태를 뜻한다. 공정무역은 단순한 원조를 뛰어넘어 제3세계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속가능한 발전 도모를 표방한다. 공정무역을 통해 소비자들은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제품에 공정한 가격을 지불해 윤리적인 구매를 실천할 수 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