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영성의 길

입력 2010-12-07 18:29


(22) 두 가지 죽음

십자가에 못 박히면 우리는 두 가지로 죽는다. 먼저 법적으로 죽고 다음 육체적으로 죽는다. 옛날 로마시대에 한 죄수가 십자가형을 받으면 그는 그 즉시로 죽었다. 그의 사회적 신분, 가족과의 관계, 호적상의 기록은 사형선고를 받는 즉시 종결되었다. 아직 그의 목숨이 살아 있어도 그를 산 사람으로 여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죽음은 사형장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손에 못이 박히고 머리에 가시관이 씌워지면 그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죽는다. 그리고 횡경막이 내려 앉아 숨을 헐떡이며 결국 심장이 멈출 때까지 그의 처절한 사투는 계속된다. 실제 죽는 시간은 죄수에 따라 달랐다. 어떤 죄수는 못이 박히자마자 쇼크로 죽었고 어떤 죄수는 하루 이틀 혹은 사흘 이상 버티다 죽었다. 예수님은 여섯 시간 만에 죽었다.



갈라디아서는 십자가의 죽음에 대하여 두 가지의 죽음을 말한다. 2장 20절의 죽음과 5장 24절의 죽음이다. 2장 20절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죽음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거기서의 나의 죽음은 수동적인 죽음이다. 내가 나를 못 박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못 박았다. 내가 나의 죽음의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가 죽을 때 나도 함께 죽었다. 시제도 과거형이다.

“못 박혔나니.” 내가 지금 나를 못 박은 것이 아니라 이미 못 박혔다. 나는 나의 죽음의 주인도 아니고 주체도 아니다. 나는 나의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나는 심지어 그때 거기 있지도 않았다. 어차피 내가 나를 죽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거기 있었든 없었든 중요하지 않다. 그때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 어떤 사람이 대신 죽어 내가 죽은 것처럼 해주었다. 그래서 그 죽음은 은혜의 죽음이다. 다만 내가 할 것은 그 은혜를 감사와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죽은 자로 자신을 여기는 것이다(롬 6:11).

그러나 5장 24절은 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죽음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행위의 주체도 나다. 그나마 현재형이다. 지금 내가 나를 못 박는 것이다. 그나마 계속 못 박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나오는 죽음이 이 죽음이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날마다 죽는 것은 나의 정과 욕심을 쉴 새 없이 십자가에 못 박아 평생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따라가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죽음이 법적인 죽음이라면, 5장 24절은 육체적 죽음이다. 2장 20절이 신분상의 죽음이라면, 5장 24절은 도덕적인 죽음이다. 2장 20절이 순식간에 일어난 죽음이라면, 5장 24절은 평생에 걸쳐 일어날 죽음이다. 2장 20절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과거의 죽음이라면, 5장 24절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현재적 죽음이다. 2장 20절이 죄의 본성에 대한 심판으로서의 죽음이라면, 5장 24절은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옷 입는 성화에의 죽음이다. 이것을 골로새서가 잘 요약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3)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 3:5) 영성생활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은 은혜에 감사하면서(죽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매일 죽는(죽이라) 두 가지 십자가 죽음의 삶이다.

이윤재 목사<한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