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경제] 납품단가 조정신청권은 ‘태생적 한계’… 뿌리 깊은 ‘甲의 횡포’ 관행 개선부터

입력 2010-12-07 17:31


지난 9월 정부가 발표한 대·중소기업 상생대책의 핵심은 납품단가 조정신청권이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설문조사에서 응답 중소기업의 절반이 이를 “비현실적인 방안”이라며 외면했다. 업계의 관행이 바뀌려면 중소기업쪽 목소리만 높이는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에서다.

◇상생대책의 태생적 한계=미래에셋증권 이석제 애널리스트는 7일 “건설·조선 분야 대기업들도 중소 협력업체에 현금결제를 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업황이 좋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며 “대기업이 중소기업 사정을 감안해 준다 하더라도 손님이 없어 현금이 돌지 않으면 협력업체의 목소리는 잦아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인식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10월25일부터 11월10일까지 자동차와 전자산업의 하도급 업체 2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부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응답은 14%에 그쳤기 때문이다. 납품단가조정신청권을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부여한 것에 대해 49.5%가 비현실적이라고 응답했고, ‘잘 모르겠다’가 42.0%,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는 8.5%에 불과했다.

대기업 원사업자가 중소 하도급업체의 기술 관련 자료를 요청할 경우 그 목적과 대가, 비밀유지, 권리귀속 등을 서면으로 약속하도록 의무화한 제도 역시 ‘실효성 없다’는 응답(47.5%)이 ‘실효성 있다’(9.0%)를 크게 웃돌았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다.

◇“관행개선엔 장기적 접근 필요”=태생부터 정책 대상인 중소기업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출범했지만 전망은 그리 어둡지 않다. 뿌리 깊은 관행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대·중소기업간 공감대는 형성됐다는 점에서다.

산업연구원 주현 중소벤처기업연구실장은 “대·중소기업 상생은 대기업의 팔 비트는 것도, 중소기업에 돈 뿌려주는 것도 아니다”라며 “구두 발주, 공사대금 현금지급 등 불공정거래 관행은 개선되고 있지만 1차 하도급 업체까지고, 2차까지 확산되기에는 시장 스스로 움직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사무소에 접수된 하도급법 위반 처리건수는 지난해보다 줄었다. 올 들어 지난 1일까지 건설업 부문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에 대한 처리건수는 443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471건)에 비해 5.9% 줄어둔 수치다. 제조업과 가맹사업의 하도급 관련 신고건수도 같은 기간 645건에서 643건으로 0.3% 줄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중소기업간 관행 개선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이른 측면이 있다”며 “올들어 하도급법 위반 사건 처리건수도 줄었는데 이는 공정위 직권조사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