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경제] 아직은 설익은 ‘동반성장 포옹’… 그나마 中企엔 ‘단비’

입력 2010-12-07 22:07


지난달 29일 인천시 남동공단과 경서공단. 2개월 전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에 대한 반응을 묻기 위해 중소기업들을 찾았다. 그러나 대답을 듣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였다. 상위 협력사에 밉보여 경영 어려움을 겪을 바엔 정부 도움도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달라진 게 없다는 쓴소리를 뱉었다.

◇“대책을 내놓긴 했나”=오랫동안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을 해온 D사 대표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번 대책도 그냥 묻힐 것”이라고 단정했다. 대·중소기업 대책은 지난 9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과 공정사회를 강조하면서 그 일환으로 내놓은 것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 단가조정 협의 신청권을 부여한 내용이 핵심이다.

그러나 심사숙고했다는 이 방안을 놓고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중기의 조정 신청 기피현상을 줄이기 위해 도입했다지만 여전히 신분 노출을 꺼린 중기들이 대놓고 협상을 하자고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주물조합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조정을 신청한 중기는 단 한 곳도 없었다”고 했다. 어차피 단가 조정 협상에는 중기가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부담은 여전했다. 이 관계자는 “단가 올려달라고도 못하고 대기업에 찍히는 꼴”이라며 “나아진 게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대기업에 실린더 프레임을 납품하는 D사는 정부 정책을 믿고 재계약 때 단가 인상을 요구했다가 거래가 끊겼다. 주물제품을 납품하는 K사의 속앓이도 계속됐다. 조모 대표는 “원료로 쓰는 고철, 합금, 레진 등의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지난해 9월 이후 가격 인상을 한번도 하지 못했다”며 “이달 계약에서도 대기업 측은 자사 프로젝트를 명목으로 전체 물량의 50%를 10% 할인해달라고 하더라”고 했다. 3∼4개월 전에도 비슷한 요구를 거절했다가 한 달 동안 발주를 안 해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을 할 계획이라고도 덧붙였다.

대기업의 움직임에 따라 중기들의 생사가 결정되는 상황도 여전했다. 이에 정부가 목표했던 실질적인 동반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후속조치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F사 채모 대표는 “스마트폰 열풍이 일 것으로 판단해 2년 전부터 이쪽 분야에 뛰어들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며 “정부가 ‘상생(相生)’을 운운하며 대책을 내놓은 이후에도 대기업들은 공정한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선택한 업체와만 거래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해냈다.

‘중소기업 적합 업종과 품목’을 지정하겠다는 정부의 엄포도 믿지 못할 약속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를 위해 기존 582개의 사업이양권고 업종과 품목을 간추린 뒤 개편하겠다고 발표했었다. 영화의 CG기술 등을 지원하는 C사 최모 사장은 “어디까지를 중소기업의 영역으로 볼지 등은 정해진 기준이 없다”며 “명문만 있을 뿐 정작 그 뒤로 어떻게 제한할지 등 구체적인 대안은 없는 상황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나마 나아졌다…일부 호평도=그러나 다소 희망 섞힌 얘기들도 나왔다. 납품대금 감액의 정당성을 대기업이 입증하도록 해 대기업 자의로 가격을 내리지 못하게 한 게 그것이다. 경기 부천 춘의동의 한 대기업 3차 협력업체는 “대기업 측에서 납품 단가 등을 조사하기 위해 처음으로 현장 방문을 왔더라”며 “주변 얘기를 들어보니 납품대금을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입증 서류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줄었다고 한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동반성장위원회를 설치해 대기업의 이행실적을 점검하게 하고, 대기업의 무분별한 업종 진출을 막기 위해 ‘중소기업 적합 업종 및 품목’을 설정하는 대책 등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반응이다. 하도급법 적용이 2차 이하 협력사로 확대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한 대기업들이 직접 조성해 출연하는 ‘상생협력대출’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는 대기업들이 자금을 출연해 은행을 통해 중소기업에 저금리로 빌려주는 제도다. 서울 가산동 디지털 단지에서 컴퓨터 주변기기 소모품을 유통하는 H사의 이모 대표는 “오랜 기간 모 대기업과 거래를 하고 있는데 자금이 필요해 기금을 신청했다”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3억원을 신청했다는 T제조업체 신모 대표이사도 “자금을 받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뭔가 변화된 상황이 있다는 게 낙관적”이라고 거들었다. 한 애널리스트는 “올 2분기와 3분기를 비교하면 정부가 상생대책을 강조하면서 상장 대기업과 상장 중소기업의 관계는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며 “한번 반짝했던 대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상당기간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분명 나아진 상황임을 말해준다”고 전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