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거머쥔 5개국… “대표성 없다” 틈 노리는 G4
입력 2010-12-07 17:34
“한반도 갈등 상황 해결을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UN Security Council)가 개입해야 한다.”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빅토르 자바르진 국방위원장이 북한의 연평도 도발 당일인 지난달 23일 내놓은 해법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도 같은 맥락의 성명을 발표했다.
러시아가 북한을 비난하고 나선 것만으로도 극히 이례적이다. 그러나 속내는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안보리의 역학 구도를 흔들겠다는 의도다. 강대국의 파워게임인 것이다.
안보리는 ‘거부권’으로 대변되는 강대국 독점 원칙이 철저히 작동하는 곳이다. 한국 같은 개발도상국엔 힘겨운 무대일 수밖에 없다.
일본 독일 인도 브라질 등 이른바 G4(Group of 4)는 ‘개혁’ 명분을 내세워 강대국 위주의 철밥통에 도전하는 상황이다.
◇강대국 위주의 태생적 한계=안보리는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라는 유엔 정신을 실현하는 핵심 기구다. 국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관련국들에 권고할 수 있고, 평화유지군 파견 등 적극적인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막강 권한을 지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출범 때부터 불평등한 기구였다. 전승국들이 자신들에게 안보리의 거부권을 스스로 부여했기 때문이다. 65년이 흐른 지금도 거부권이라 불리는 5대 상임이사국(P5)의 만장일치(Great Power Unanimity) 원칙은 변함이 없다. 임기도 제한이 없다.
거부권은 유엔 헌장에 규정돼 있고, 헌장을 개정하려면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통과해야 한다. 강대국들이 특권을 나눠줄 리 만무하다. 1971년 대만에서 중국으로, 1991년 소비에트연방에서 러시아로 권한이 넘겨졌지만, 같은 뿌리라서 근본적 변화로 보기 어렵다.
상임이사국들은 개도국들의 반발을 고려해 비상임이사국 수를 늘리는 선심을 썼다. 출범 당시 6개국에서 1965년 15개국으로 확대됐다. 임기는 2년이다.
◇아직은 힘겨운 도전=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국가들은 주로 ‘지역 대표성’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특히 남미와 아프리카의 경우 상임이사국이 없어 개도국의 목소리를 담보할 틀이 없다는 논리다. 현 안보리 체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역학 구도를 반영한 것이어서 글로벌 시대 역학 구도를 담아야 한다는 주장도 곁들인다.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나라는 브라질이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폐쇄적 클럽인 안보리는 중남미와 인도, 아프리카 없이 2010년의 세계 질서를 대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막강한 숫자 파워를 자랑하는 아프리카연합(AU)도 아프리카 대륙에 상임이사국 두 자리를 요구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선두주자다.
경제력과 유엔 재정기여도 2위를 내세워 일본도 매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유럽 최대 경제력을 자랑하는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 중 1개국을 줄여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구상이다. 인도는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자국 방문 당시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 발언으로 한껏 고무돼 있다.
G4의 상임이사국 도전은 2005년 크게 실패한 적이 있다. G4는 ‘상임이사국을 6개국 더 늘리고, 비상임이사국을 4개국 추가하되 새로 상임이사국이 된 국가엔 15년간 거부권을 주지 말자’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당시 미국은 겉으로 이들 국가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상임이사국 11개국, 비상임이사국 15개국 체제안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조용한 물밑 외교’ 원칙이 적용되는 안보리엔 맞지 않는 거대 체제라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과거사 매듭과 군국주의 경계를 내세운 한국과 중국의 반대를 받고 있다. 브라질은 남미 지역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반대를, 인도는 파키스탄에 막혀 있다. 독일은 같은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이탈리아의 반대에 직면해있다.
유엔 주변에선 “기존 상임이사국들이 기득권을 포기하려 들지 않아 이들 국가들이 상임이사국이 되기까진 20∼30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며 “국제 역학 구도 변화가 변수”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서 ‘이사회 구성 8년 주기 재검토’ 등 IMF 기구 개혁도 이뤄진 만큼 안보리 상임이사국들도 ‘변화’의 큰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당위론이 일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도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국가적 위상이 업그레이드된 만큼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할 때라는 지적도 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