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군인과 국가
입력 2010-12-06 17:41
국방부 행정민원실이 있는 서문 앞에 가끔 카메라 기자들이 진을 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 군에 입대한 연예인이 제대하는 모습을 찍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3일 아침 출근길에도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방부 서문에는 카메라 기자들이 잔뜩 서 있었다. 이날 제대한 병사는 배우 온주완이었다.
영화 ‘발레교습소’로 데뷔한 그는 2008년 10월 27일 입대했다. 그는 “먼저 제대해 전우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불과 열흘 전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동료들이 비상대기 상태인데 자신만 빠져나온 듯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국군장병들이 있기에 국가가 있고 여러분의 가족, 연인이 있습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올 들어 군은 국민들로부터 참 많은 비판을 받아야 했다. 지난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태에서부터 8월 9일 북한의 해안포에서 발사된 포탄 10여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날아들고, 급기야 11월 23일에는 연평도 해병부대와 민가가 북한 방사포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 군은 제대로 된 반격을 단 한번도 하지 못했다. 군의 무력한 대응이 도마에 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 기술로 개발한 K-21 장갑차와 K-1 전차의 결함으로 인한 사고가 속출했다. 올 3월 2일 발생한 공군 전투기 추락 사고를 시작으로 같은 달 육군 헬기 추락 사고가 나고, 11월 들어서는 해군 고속정이 어선과 충돌해 침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데다 공군 정찰기가 비행훈련 중 추락해 2명의 조종사가 목숨을 잃었다. 이어 도하훈련 사전 점검차 남한강 수역을 측정하던 육군의 소형 고무보트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고가 생길 때마다 군의 기강 해이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비판받을 만하고 욕 먹을 만하다. 그러나 이런 모든 오류의 책임이 군에게만 있을까. 올해 군복을 벗은 한 예비역 장군은 “군은 국민의 의지를 구현한다”고 말했다. 국민이 싸우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어야 군도 주춤하지 않고 단호한 대처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군의 판단에 신뢰를 보내고 지원을 해줘야만 군이 자신감을 갖고 소신 있게 행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군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도록 행동한 잘못도 있겠지만 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국가의 잘못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저서 ‘군과 국가’에서 미국의 군에 대한 통제 문제를 설파해 눈길을 끌었었다. 세계 최강 군대로 국민들의 따뜻한 지지를 받고 있는 미군도 한때 정치권과 국민으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기도 했다. 헌팅턴은 사회의 군 통제 방식을 ‘주관적 통제’와 ‘객관적 통제’로 분류했다. 주관적 통제란 군대를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이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객관적 통제란 군의 직업주의를 인정하고 군을 정치적으로 탈중립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헌팅턴은 객관적 통제가 군과 국가 간의 관계에 바람직한 형태라고 강조했다. 즉 군인들의 전문화를 향상시키고 정치권과는 무관한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 국민들의 지지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헌팅턴의 분류에 따르면 우리 군은 주관적 통제를 많이 받아왔다. 일부 정치군인에 의해 군이 직접 정치에 관여하기도 했다. 문민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인사로,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군이 정치권에 휘둘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군이 국민들의 깊은 신뢰를 받기 힘들었다.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군은 자신이 없고 늘 외부의 눈치를 보게 된다.
신임 김관진 국방장관이 우선 관심을 쏟아야 하는 부분은 실추된 군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인 것 같다. 정치권도 이제는 군에 대한 ‘주관적 통제’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