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순만] 논술의 죽음
입력 2010-12-06 17:42
정부가 내년부터 대학 입시에서 논술시험을 보지 않거나 비중을 줄이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밝혔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논술이 사교육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시험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입학사정관제를 잘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한밤중의 홍두깨 같은 방안이다. 한 나라의 교육정책이 이렇게 오락가락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학생들이 문리를 깨우쳐 논지를 세워나가거나, 그것을 테스트하는 것을 일종의 복권당첨이나 전술 전략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싶어 두렵기까지 하다.
먼저 얘기해두겠다. 논술이 대입전형의 주된 요소가 된다는 것은 애당초 웃기는 이야기였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미국 유명대학에서 실시하는 에세이는 수험생의 논리력이나 창의력 등을 살펴보는 보조적 전형 수단이지 그 자체로 입학여부를 결정짓는 시험이 아니다. 몇 년 전 교육과학기술부가 논술만으로 대학을 갈 수 있게 하겠다고 했을 때 그것은 논술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의 ‘혁신적’ 아이디어인 듯 해보여 마뜩지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논술이 ‘사교육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시험’일 뿐이며, 논술전형을 시행하지 않는 대학에는 돈을 더 주겠다는 발상은 논술을 2중 죽음으로 모는 ‘초혁신적’ 아이디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논술은 교과지식을 이해한 다음 그것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을 요구하는 글쓰기다. 충분한 교과 지식 없이도 틀에 박힌 공식으로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교육적 기술(skill)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학교에서 평소의 교과과정에 충실하면서 체계적으로 지도받은 학생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단기간의 기술을 가르치는 사교육이 통한다면 채점을 하는 대학이나 논술을 지도하는 중고교는 심각하게 반성해야 하고, 그런 사교육에 두 손을 든 교과부는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데 있어 사교육기관을 상전으로 모셔다 자문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것의 대안으로 입학사정관제가 거론된다면 이 역시 미래는 뻔하다고 단정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입학사정관제로 대학에 입학한 선배를 본 고교생들 사이에는 입학사정관제가 ‘운빨’이며 논술이 차라리 공정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런 구조라면 3년 후 혹은 5년 후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지 않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듬뿍 준다는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임순만 수석논설위원 s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