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을 생각한다] 현대판 ‘계급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

입력 2010-12-07 00:48


비정규직 문제에는 전문가들도 저마다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최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근로자의 파업을 촉발한 ‘사내하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 판결을 계기로 비정규직 문제의 초점이 간접고용으로 넘어가면서 해법은 더 복잡해졌다. 법과 노동시장의 괴리 때문에 정규직은 사내하도급, 특수고용, 아웃소싱, 호출근로 등으로 전환되고 고용형태는 다양화되고 있다. 그러나 고용형태 다양화에 따른 고용의 질 저하는 기업이 비용을 절감해 단기이익을 극대화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최근 추세와 양극화 실태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남용하고 심한 차별을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기업 규모간 임금·근로조건 격차가 완화되기는커녕 심화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해 비정규직관련법이 제정돼 2007년 7월부터 시행됐다. 지난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비정규노동센터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비정규직 실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비정규직 안에서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2년 지난 기간제 근로자를 무기근로자(정규직)로 간주하는 법조항으로 기간제 근로자가 줄면서 정규직으로 상향 이동하는 경우가 생겼다. 한편으로는 고용이 더 불안한 간접고용으로 하향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간접고용, 특히 파견과 호출근로자가 늘었고 단시간근로도 꾸준한 급증세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정규직 증가 추세를 볼 때 (비정규직법의)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면서 “다만 차별시정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반면 비정규노동센터는 “상향·하향 이동의 변화 자체가 미세해 법의 긍정적, 부정적 효과를 판단하는 데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둘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으며, 비정규직의 약 3분의 2가 사회안전망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월평균 임금총액(지난 3개월 평균)은 정규직이 지난해 8월 255만원에서 지난 8월 266만원으로 11만원(4.3%) 인상됐고, 비정규직은 120만원에서 125만원으로 5만원(3.7%) 올랐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격차는 8월 기준으로 2007년 50.1%, 2008년 39.9%, 2009년 47.2%, 2010년 46.9%로 계속 확대됐다. 사회보험의 적용 비율 격차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정규직은 4대 보험 가운데 고용보험을 제외하고는 90%이상 가입한 반면 비정규직은 산재보험을 제외한 3대 보험 모두 33% 안팎만 보장받고 있다.

셋째, 노동시장의 약자인 여성, 청년층, 중고령층의 고용변동이 전반적 고용구조 악화를 주도하고 있다. 남성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율은 6대 4 수준인데 여성은 3.5대 6.5로 비정규직 비율이 훨씬 높다.연령대별로 남성은 20대 초반 이하의 저연령층과 60세 이상의 고령층만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다. 그러나 여성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비정규직이 많다.

간접고용의 문제

비정규직 가운데서도 직접고용보다는 간접고용 쪽이 열악하다. 최근 문제가 된 사내 하도급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은데다 본격적으로 조사된 적이 없어서 정확한 규모도 알 수 없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8월 300인 이상 사업체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근로자의 20%가량인 32만5900여명이 사내 하도급 근로자였다. 노동계는 이를 근거로 사내하도급 규모를 60여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파견과 도급은 모두 근로자가 외형상 독립적인 외부업체에 고용돼 특정회사로 보내져 일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다만 파견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회사가 작업을 직접 지시·감독하는 반면 도급은 사용회사가 작업 지시나 감독을 하지 않는다.

일부 대기업은 고용을 유연화하고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자사 생산라인 일부에 하도급업체의 인력을 쓰고 있다. 자사가 사람을 직접 부려야 하는 일자리에는 파견근로자를 써야 하지만 파견근로에는 법적 규제가 따르기 때문에 사내하도급 계약으로 위장하는 것이다. 파견근로자는 관련법에 따라 2년 이상 사용했을 때 사용사업체가 직접 고용해야 하며 차별금지와 차별시정절차의 적용을 받는다.

대법원과 서울고법은 각각 지난 7월과 11월 ‘컨베이어벨트 위의 사내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불법파견’ 판결을 내림으로써 무분별한 간접고용 확산에 제동을 걸었다. 법학자들은 사법부의 메시지가 정부에 대해 보완입법을 하라는 것으로 본다. 이는 비정규직 문제 대처에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해법과 대안

비정규직 해법을 대별하면 3가지 정도다. 먼저 경영계를 중심으로 파견근로자보호법 등의 규제를 완화해 생산성에 부합되는 임금을 받는 공정 노동시장을 확보하자는 노동시장적 접근이 있다. 이에 맞서 대법 판결에 따른 보완입법이나 관련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법적 접근이 있다. 마지막으로 원청 및 하청업체 노사가 모두 참여하는 상시적 4자협의체 구성과 협의를 통한 노사관계상의 해법도 제시됐다.

성균관대 조준모 교수는 “지금과 같은 법과 노동시장의 부조화는 불·탈법을 조장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게 하면서 거래비용만 높인다”고 말했다. 그는 “법이 차별해소 기능을 일부 갖지만 고용관행의 다양화 추세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며 “그에 따른 부작용은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개발연구원 최영기 석좌연구위원은 “고용은 안정시키되 임금은 시장 임금에 수렴시키는 게 비정규직 수요를 줄이는 근본적 해법”이라고 말해 기본적으로는 노동시장적 해법을 일단 지지했다. 최 위원은 “사내하도급을 규제하기 위한 법제화는 숱한 논란을 야기할 것”이라며 “그러나 사내하도급도 차별 금지 대상에는 포함시켜야 논리적으로 정당하다”고 말했다.

김유선 소장은 “법만 갖고는 비정규직 문제가 다 풀릴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있는 법이라도 엄정하게 집행하고 법 제정과 보완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법과전문대학원 박지순 교수는 “(노동부가) 현장에서 엄격한 감독을 해야 하는데 무기(불법파견 처벌조항)는 만들어 놓고 창고 속에서 녹슬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은 “불법파견으로 판명될 경우 1인당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적지 않은 경제적 징벌이 가능해 정책의지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흡한 사회안전망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지하는 대안은 사회안전망 확대다. 그러나 정작 실천과제에 들어가면 기획재정부와 재계는 고용보험 재원 확충이나 보험료 인상에 신경질적 거부반응이나 난색을 드러낸다.

비정규직 문제는 간접고용과 특수형태고용의 문제를 제외하면 더 많은 숫자의 주변부 노동자 문제로 집약된다. 노동연구원 은수미 연구위원은 “정규직 여부보다 기업규모별로 양극화의 경계가 나뉜다”면서 “전체 임금근로자의 60%를 차지하는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불완전고용과 근로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조 교수는 “임금 격차의 모든 요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기업규모별 격차”라면서 “기업규모는 정규·비정규직, 성별, 연령별, 학력별 등의 모든 격차와 양극화를 아우르는 변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제 사회안전망 확대, 그 중에서도 고용보험의 내실화를 위해 일반회계에서 돈을 풀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조 교수는 “최근의 감세논란은 과녁을 한참 벗어났다”면서 “우선은 재정이 감당 가능한 최대 범위 안에서 사회안전망 확대에 투자를 하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기업의 고용 유연성을 높이면 경쟁력 강화와 세수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항 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