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시험을 이기신 예수

입력 2010-12-06 17:59


마태복음 4장 1∼11절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이 나옵니다. 마귀의 첫 번째 시험은 “돌이 떡이 되게 하여 주린 배를 채우라”는 것입니다. 즉 현실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당장 배가 고픈데 무슨 말씀이며 기도며 사랑이며 은혜냐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도 필요를 먼저 채우고 그 후에 복음과 진리와 사랑, 은혜를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성공하려면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요구하는 변화 앞에 우리는 참 바쁘고 분주합니다.

그런데 현실 문제가 급한 우리에게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목자가 될 것을 명령하시기 전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세 번째로 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업적을 쌓느냐, 어떤 결과를 보여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와 사랑을 나누고 있는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유혹은 “성전에서 뛰어 내려라, 그러면 사역의 대상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너를 믿을 것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떠셨습니까. 유혹을 물리치고 함께하셨습니다. 외로이 양들에게 풀을 뜯게 하는 목자처럼 말입니다. 목자의 역할은 양으로 하여금 먹고 마시고 쉴 수 있도록 인도하며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치료하는 자도 아니요, 화해자도 아니요, 생명을 주는 자도 아닙니다. 주님께선 이런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무제한적인 사랑을 여는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함께하는 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시험은 “내가 이 세상 모든 나라의 영광을 네게 주겠다”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돕겠노라 말해왔습니다. 이런 합리화에서 십자군이 생겼고, 종교재판도 열렸습니다. 11세기 교회 대분열, 16세기 종교개혁, 20세기 거대한 세속화 등 교회사 속에서 파열의 주 원인이 가난하고 힘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행사한 ‘힘’ 때문이었음을 봅니다.

힘에 대한 유혹이 막기 어려울 정도로 강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사랑이란 어려운 과제에 대한 손쉬운 대체물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되는 것이 더 쉽고, 사람들을 사랑하기보다는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사랑 대신에 힘을, 십자가 대신에 지배를, 인도를 받기보다 인도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사랑을 힘과 바꾸려는 유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숙이란 자신이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기꺼이 이끌려 갈 수 있는 능력입니다. 성도의 자세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나를 주장하기보다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일상의 고통과 기쁨 등 현실을 깊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모든 관점을 예수님 중심으로 생각하며 판단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시험을 이기셨던 예수님처럼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병철 목사(온양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