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을 생각한다] “같은 업무에 월급은 半… 차별의 굴레, 끝이 안보여”

입력 2010-12-06 21:27

드디어 고용 불안을 떨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지만 돌아온 것은 폐업이라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지난 7월 대법원 판결로 근로기간 2년을 채우면 비정규직 꼬리표를 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폐업한 업체 대신 새로 들어온 하청(하도급)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으면 다시 2년을 채워야 하는 그야말로 ‘리셋’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2년 뒤 하청업체가 또다시 폐업을 하면 그만이어서 영구적인 비정규 상태가 계속된다는 불안감이 몰려들었다.

대법원은 최근 원청업체 정규직과 같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2년 이상 일한 사내하청 근로자를 과거 파견법에 따라 원청업체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최씨는 하도급근로자가 아니라 파견근로자라는 것이다. 회사 측은 파기환송심을 거쳐 확정이 돼야만 효력이 발휘된다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률 지식은 없지만 대법원에서 직접고용하라는 취지로 판결했으면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냥 주저앉아 판결이 확정되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 새로운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직장을 잃게 된다. 사인을 하면 영영 비정규직으로 살다가 인생이 끝날 것 같았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심정을 재구성해봤다. 파견법은 제조업 생산라인에는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규제를 피해 파견을 받는 대신 사내하도급을 쓴다. 하지만 노동계는 조선·자동차 업계 대부분에서 이름만 하도급이지 사실상 파견, 즉 불법 파견이라고 입을 모은다. 컨베이어 벨트에 늘어서 정규직 근로자가 오른쪽 바퀴를 달면 사내하청 직원은 왼쪽 바퀴를 조립하는 식이다.

급여는 정규직의 50∼60% 수준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같은 일을 하면서 왜 월급은 적게 받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 때문이다. 출퇴근 차량 이용이나 식당·휴게실 사용 등 사내 복지에서도 차별대우를 당하기 일쑤다.

서럽고도 서럽다… 현장의 목소리 .

“아이 크며 미래 더 불안 돈보다 명예 찾고싶다”

“지금 제 남편은 1공장의 차가운 곳에 있습니다. 이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현대차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라는 말만 들으면 주변에서 ‘안 된다. 평생 고생한다’며 말렸습니다. 정말 전 그때 서러웠습니다. ‘사람이 비정규직이냐. 사회가 이렇게 만들었는데….’ 몇 번의 어려움을 겪고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현실이 눈에 보이는 겁니다. 불안한 고용과 앞으로 아이에게 들어갈 학자금….

하지만 아이의 아빠로서 열심히 벌어야 한다며 다른 조의 특근까지 들어가서 일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 후회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젠 불안하게 미래를 바라보고 싶진 않습니다. 아이가 아빠의 직업란에 떳떳하게 적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돈이 아니라 명예를 찾고 싶습니다.”

<파업 중인 울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조원의 아내>

“연애를 하고 안하고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

“결혼을 하면요. 회사에서 죽을 둥 살 둥 일하지 않고, 죽지 않을 만큼만 하려고요. 야간잔업도 좀 줄이고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 토끼 같은 새끼들 안고, 뽀뽀하고, 마누라하고 마주 앉아 뜨신 밥 먹고, 기운도 좀 돌아서 산책도 하고. 박봉이긴 마찬가지겠지만 부모님 맛집 모시고 다니면서 맛난 것도 먹고, 가끔씩 용돈도 드리고 싶고 그러죠. 근데 모르겠어요. 복직을 해도 그런 인생이 보장되지는 않을 거니까. 그런데 연애는 뭐 혼자 합니까? 연애하고 안 하고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예요. 현장에 복귀하면 꼭 연애를 할 겁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은 그래도 행복한 편입니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600명, 현대차에 고용된 1만 비정규직,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연대하고 있으니까요.”

<116일 동안 노숙농성 끝에 복직을 얻어낸 동희오토 사내하청 근로자>

“맞교대·특근·야근 안하면 5∼6년차 연봉 2000 안돼”

“미팅이나 소개팅에 나가서 현대차에서 일한다고 하면 꼭 물어봅니다.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무슨 조선시대 양반 상놈 구분하는 것도 아니고. 참 나….”

“정규직과 똑같이 일합니다. 하지만 월급은 60%도 못 받습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공무원 사무관들이 우리보다 임금이 적다고 하는데 웃기는 소립니다. 공무원들 보고 12시간 맞교대에 주말특근에 야간작업에 담당구역 청소까지 하라고 해보세요. 우리들은 입사할 때 딱 최저임금인 시급 4110원에서 시작해요. 공무원들 시급 한 번 따져보라고 하세요. 8시간 일하고 퇴근하는 삶이라면 우리는 5∼6년 다녀봐야 연봉 2000만원이 안 된다니까요.

대법원 판례는 소송을 낸 개별 근로자에게만 적용된다고 우기는데, 수십만 수백만 비정규직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소송을 내는 방법 밖에는 없을까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근로자>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