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 인터뷰] “북한이 노리는 건 남남갈등… 하나 된 모습 보여야”
입력 2010-12-06 17:34
22년 의정 경험 살려 국회 이끄는 박희태 의장
대담=김의구 정치부장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왜 별 볼일 없는 저를 찾아오셨나. 여야 원내대표들 찾아가야 하는데 번지수를 잘못 찾아오신 거 같다”고 말을 꺼냈다. 짐짓 딴청을 피우는 듯하면서도 국회의 가장 큰 현안인 예산안 처리는 결국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는 얘기를 한 셈이다.
여야가 내년 예산안 처리 시기를 놓고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던 지난 3일 오후 박희태(72) 국회의장을 만났다. 그는 여당의 단독 처리 상황이나 직권상정 가능성 등을 가정해 묻는 질문에는 확답을 피했다. 박 의장은 “원내대표들이 정치력 있고 유능하니 잘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본회의) 사회를 볼 준비는 언제든 돼 있으니 ‘다 됐다’고 하면 사회를 봐야지”라고 말했다. ‘다 됐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시간이 다 됐다든지 합의가 다 됐다든지”라며 “법이 제게 부여한 권한을 활용해 책무를 수행하겠다”고 부연했다. 박 의장은 “(지난 2일로) 법정시한을 넘겼으니 하루라도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여야 합의에 대한 기대는 여전했지만 ‘법대로 하겠다’ 혹은 ‘법이 부여한 권한을 활용하겠다’는 대목에선 예산안의 조속한 처리 쪽에 다소 힘을 싣는 듯했다. 여야 합의가 안 될 경우 직권상정을 결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회에서 다시 볼썽사나운 충돌이 발생할 경우 ‘정치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던 그의 목표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어 직권상정이라는 선택만큼은 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에 9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해 달라고 했는데 가능하겠는가.
“지금 예결위에서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잘되는 길이 터지지 않을까 싶다.”
-분위기는 별로인 거 같다. 여야간 몸싸움도 있고.
“지금까지도 몇 번 부딪칠 뻔하다가 잘 넘어가지 않았나. 어려운 고비가 있겠지만 양당 원내대표가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또 국민들이 그렇게 바라고 있으니 잘 하지 않겠느냐.”
-예산안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한다고 해도 사회 볼 것인가.
“여야 원내대표가 풀어나가는 게 의회의 오랜 관행이고 법도 그렇게 돼 있다.”
-직권상정이 불가피한 상황도 있을 수 있지 않나.
“원내대표들이 타협점을 못 찾으면 둘이서 손잡고 어디든 들어가 결론이 날 때까지 나오지 말아야 한다. 원내대표들이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원활한 의사진행을 위한 복안은.
“국회의장이 나서지 않는 상황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중재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 ‘염소의 지혜(외나무다리에서 맞닥뜨린 두 염소가 싸우지 않고 한 염소가 엎드리면 등을 타고 다른 염소가 넘어가는 것)’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할 작정이다. 22년의 의정경험을 살려 ‘노마지지(老馬之智·경험을 쌓은 사람이 갖춘 지혜)’를 발휘하도록 하겠다.”
지난달에도 여야는 2차례 정도 일촉즉발의 위기를 겪었다. 충돌 일보직전까지 갔으나 여야는 2번 다 국회의장실에서 합의를 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했길래 국회의장실만 가면 합의가 되느냐’고 했더니 박 의장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이 방에서 나갈 수 없다고 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 도발했다.
“북한의 도발이 단발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련의 계획을 갖고 연속되게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계속 도발이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정신무장부터 하고, 항상 전쟁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방어에 임해야 한다. 특히 평화무드일 때는 특별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정치 지도자로서 국민 여러분께 부끄럽고 죄송하다. 유가족들이 슬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힘껏 도와야 하겠다. 이런 희생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을 보다 굳건히 만들고 안보태세를 더욱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여야는 이번 도발 원인을 놓고 맞서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이 노리는 것이 남남갈등 유발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하나 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박 의장은 6선 의원이다. 하지만 2008년 18대 총선 때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했고 원래의 지역구인 남해를 떠나 지난해 10월 양산 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국회에 입성했다. 그로서는 퍽 아픈 기억이다.
-지난 총선 공천은 어떻게 된 건가.
“왜 내가 공천 못 받았는지 좀 가르쳐 달라. 나도 제일 궁금한 게 그거다.”
-공천을 못 받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나야 뭐 안 주니까 못 받은 거지. 왜 안 줬는지는 모르겠다.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된다. 공천 작업 막바지 때 지역구에 내려가 있었다. 공천 발표 전날까지 이곳저곳에서 전화가 계속 와서 ‘작업 다 끝났는데 (박 의원도) 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별로 고민 안 했다. 그런데 막상 공천 당일 오전부터 분위기가 이상하더라. 기자들 전화만 엄청 오고, 전날까지 전화하던 공천 관계자들은 전화가 없더라.”
-기분이 어땠나.
“황당했다. 지역구 일 끝내고 바닷가에서 당직자와 함께 술 한 잔 하고 있었는데 ‘공천 안 됐다’고 연락이 왔더라. 그 자리에서 차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근데 막상 올라오니 이미 상황 다 끝나서 문 닫아버렸는데 뭐 할 말이 없더라. 그래서 나는 아무에게도 얘기 안 했다. 언론에 나가 떠들지도 않았다. 다 끝났는데 말하는 게 추하기도 하고.”
-공천 탈락 후에는.
“하루는 당에서 불렀다. 좋은 자리 주려나 하고 갔더니 총선 선거대책위원장 해 달라고 하더라. 참 엉뚱한 얘기였다. 공천 떨어진 내게 선거운동을 지휘하라니…. 근데 거절을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 그래서 혼자 하는 거보다 둘이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김덕룡 전 의원이랑 같이 하겠다고 했다. 총선 선대위원장 하면서 선거 기간 내내 전국을 돌아다녔다. 당에서 힘들다고 판단한 곳만 주로 찾아다녔는데 양산에도 두 번이나 갔다. 거기서 출마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양산 보궐선거에 당선된 그는 지난 6월 18대 국회의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지난 6개월간의 국회의장 생활에 대해 그는 “물리적 충돌이나 큰 파행 없이 국회가 원만히 운영돼 다행”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어떤 국회의장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국회다운 국회를 만들고, 정치의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국회의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물론 의원들에게는 18대 후반기 국회가 의정활동의 천국이었다고 기억됐으면 좋겠다.”
-의장 취임 당시 정치 6단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7단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의장 임기 후 계획은.
“현재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자연스럽게 승단할 수 있지 않을까. 국회의장 역할 이후 계획을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일단은 현재의 국회의장 직분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 ‘축사 섭외 1순위’로 꼽힌다. 분위기를 띄우는 데 최고라는 평가가 나오던데 축사 준비는 어떻게 하나.
“행사 주최자 및 행사의 주제와 내용, 토론 참여자 등의 약력 등을 참고해서 사전에 축사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뒤 현장의 행사장 분위기를 보고 즐거운 축사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요즘 젊은 의원들을 평가한다면. 특별히 눈에 띄는 의원이 있나.
“옛날에 비하면 세미나 연구회 등 정말 공부를 많이 하더라. 전부 다 열심히 해서 누가 잘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누가 정말 잘하는지는 한 4년은 지나봐야 알 수 있겠지.”
-명 대변인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요즘 대변인들을 평가한다면.
“요즘 대변인들도 모두 훌륭한 자질을 갖고 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단계를 뛰어넘어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촌철활인(寸鐵活人)을 위해 노력해줬으면 한다. 여야 간 협상 문화 정착에도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면 좋겠다.”
국회의장을 맡은 후 그는 개헌에 대해 똑같은 말을 해왔다. “국회에서 논의가 된다면 성심껏 뒷바라지를 하겠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날 그는 18대 국회에서의 개헌 추진을 다소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개헌 문제는 어떻게 대처할 건가.
“국회에서 개헌 논의되면 열심히 뒷받침해야지. 근데 개헌을 하려면 추진체가 있어야 하는데 산발적으로 말만 나오고 있다.”
-좀 어렵다고 보는 건가.
“포커스가 맞춰져야 제대로 논의를 할 수가 있는데 지금은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개헌 얘기를 하기는 하는데 뭘 하자는 건지 떠오르는 게 없다. 그러니 동력이 안 생긴다. 옛날처럼 단임제다, 아니면 직선제다 이렇게 선명해야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데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안 된다.”
-개헌 필요성은 공감하지 않나.
“필요성은 공감하는데 각자 필요성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르다. 그러니 논의에 초점이 안 맞는다.”
박 의장은 한·미 FTA에 대해서도 눈앞의 유·불리에 매몰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멀리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로선 국력 신장을 위해 FTA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력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최근의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보니 어떠셨나.
“이제는 ‘체력이 국력’이 아니라 ‘국력이 체력’이더라.”
-어떤 의미인가.
“국민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종목도 많더라. 그런 비인기 종목도 국가에서 훈련 뒷받침해서 메달 따냈다. 우리가 국력을 기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메달을 이렇게 많이 땄겠나. 국력을 기르기 위해 그동안 노력했던 국민들께 감사해야 하고 선수들이 딴 금메달을 국민 가슴에 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에 뛰어든 후 가슴에 새기고 있는 좌우명이 있다면.
“유능제강(柔能制剛)이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이다. 강한 카리스마는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을 수 있다. 이해가 대립되는 사람들을 부드럽게 만들어 타협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장만큼 중재의 능력이 필요한 자리가 있을까. 바야흐로 그 능력이 발휘되어야 할 시기가 됐다. “부드러움이 바로 나의 무기”라고 얘기하는 박 의장의 집무실에는 ‘柔能制剛’이라는 네 글자가 씌어진 액자가 걸려 있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20년 넘게 검찰에 몸담았고 부산고검장으로 일하던 중 정치인으로 변신했지만 탁월한 언변으로 정치 입문 1년도 안 된 88년 12월 당 대변인을 맡았다.
4년3개월간이나 대변인으로 재직하면서 그는 수많은 정치조어를 만들어내며 최고의 명대변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정치 9단’이나 ‘총체적 난국’,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등 지금도 회자되는 많은 표현들이 그가 대변인 시절 만들어낸 것이다.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의 원내총무, 한나라당 부총재·최고위원·대표 등 주요 당직을 섭렵했고 법무부 장관을 맡기도 했다. 6선 의원으로 17대 국회에서는 국회 부의장을 맡았고 지난 6월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정승훈 노용택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