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79)
입력 2010-12-06 10:30
우물(井)을 기다리며
시정잡배(市井雜輩)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정(市井)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얕잡는 투로 하는 말입니다. 요즘은 ‘시정市井’이라는 말 대신에 ‘시장市場(매일 또는 정기적으로 사람이 모여 상품 매매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만, 본디 이것은 우물에 물 길러 나왔다가 적당한 흥정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옛날에는 동네에서 가장 사람이 빈번하게, 많이 모이는 곳이 우물이었던 것이지요. 우물(井)은 단지 물만 긷는 곳이 아니라 각자 생산한 물건을 바꾸어 쓰고, 서로의 가슴을 주고받으며 애증을 키우는 곳이었습니다.
우물(井)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언덕 아래나 돌 틈에서 솟구쳐 오르는 샘(泉)을 사용하기 편리하게 꾸며 놓은 것이지요. 돌이나 나무로 빈지를 짠 형상이 곧 ‘우물 井’인 셈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샘’이나 ‘우물’을 다르게 생각지 않았습니다. 샘이나 우물은 동일하게 생명의 원천이요 행복의 상징이었습니다. 샘은 홍수나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물은 신성하고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생명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물은 누구에게도 독점 당하지 않았으며, 샘은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물은 항상 자기를 마셔 주기를 기다리며 깨끗하고 맑은 물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샘가에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不淨)해서는 안 됩니다. 상여가 부득이 샘가를 지나야 한다면 반드시 멍석으로 샘을 덮은 연후에 지나가야 했습니다. 독점할 수 없고 부정(不淨)해서는 안 되는 생명줄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대의 예루살렘 종교는 독점의 우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목말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말라 하지 않는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기 때문이다”(요 4:14) 그 어떤 이기심과 독점과 불결한 욕망으로 더렵혀지지 않은, 누구에게나 항상 제공되는 ‘우물(井)’로서의 자기 자신을 말하시는 것입니다.
대강절에 우리는 ‘영원한 우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