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재협상 타결] 왕창 내주고 찔끔 받아… 자동차 ‘이익의 불균형’ 극심

입력 2010-12-05 18:36


한·미 양국이 2007년 6월 30일 협정문에 서명하고도 3년 5개월간 질질 끌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마치고 뚜껑을 열었다. 자동차에서는 미국이 요구한 관세 철폐 기한 연장과 세이프가드(수입제한조치) 도입, 안전 및 연비 기준까지 반영됐고 한국은 농업과 의약품에서 관세 철폐 기간 연장 등을 받아냈다. ‘이익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정부의 공언과 달리 ‘말로 주고 되로 받았다’는 평가다.

◇주요 합의 내용은=한·미 양측은 모든 승용차에 대한 관세를 FTA 발효 4년 뒤 철폐하기로 하고 전기자동차 등의 관세 철폐 기한을 앞당기기로 했다. 또한 협정문에 규정돼 있는 일반 세이프가드 외에 새로운 세이프가드가 추가적으로 도입됐다. 안전기준도 조정했다. 당초 제작사별로 6500대까지였던 기준을 2만5000대까지로 확대, 미국 안전기준을 준수할 경우 한국 안전기준을 준수한 것으로 인정키로 했다. 다만 심각한 안전 문제 발생시 조치 권한 확보 등으로 조건을 달았다. 연비 및 이산화탄소 기준과 관련, 2009년 기준으로 4500대 이하 소규모 제작사에 대해 19%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일본, 캐나다 등이 유사한 규제 내용을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뒀다.

우리 측은 목살, 갈비살 등 냉동 돼지고기 관세철폐 기간을 당초 2014년에서 2016년으로 2년간 연장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에 관세율은 현재 25%에서 2012년 16%, 2013년 12%, 2014년 8%, 2015년 4%, 2016년 0%로 인하된다. 복제의약품 시판허가·특허와 연계된 의무 이행을 3년간 유예키로 했다. 허가·특허 연계 의무는 복제의약품(제네릭 의약품) 시판허가 신청자 신원을 특허권자에게 통보하고 특허권자가 허락해야만 판매가 가능하도록 하는 조치다.

또한 미국지사 파견 근로자에 대한 비자(L-1)유효기간도 연장키로 합의했다. 미국 내 새롭게 지사를 설립하는 경우 비자유효기간이 1년에서 5년으로 대폭 연장되고, 기존 지사의 경우 3년에서 5년으로 연장돼 비자연장을 위해 출입국해야 하는 불편을 덜게 됐다.

◇주판 두들겨보니=이번 재협상을 통한 양국의 손익계산서를 뽑아보면 기존 협정과 비교해 우리 측의 타격이 클 것이란 풀이다. 야당은 우리가 미국에 양보를 한 것이 3조원, 우리가 양보를 받은 게 3000억원 정도로 봤다. 일단 자동차 업계의 이익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대미 승용차 수출액은 총 54억9939만1000달러(49만대)다. 미국산 승용차 수입액은 1억6146만4000달러였다. 한국산 승용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율이 2.5%인 만큼 단순 계산하면 우리나라는 1억3748만4775달러를 관세로 떼여 왔다. 미국산 승용차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세율은 8%이므로 미국 측의 부담은 1291만7120달러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 한·미 FTA 추가협상 결과 한국 측은 4년간 관세율 2.5%가 유지돼 앞으로 약 5억 달러 이상을 관세로 물게 됐다. 하지만 미국산 승용차는 관세율이 즉시 4%로 줄게 되는 만큼 관세 부담도 절반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반면 축산업계와 복제약 비중이 높은 국내 제약업계는 숨통이 트였다. 관세 철폐시한이 연장된 냉동목살의 경우 미국에서 수입되는 돼지고기의 약 80%를 차지하기 때문에 우리 쪽에 이득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량은 약 46억 달러다. 이 중 돼지고기가 2억200만 달러이며 특히 냉동목살은 1억6000만 달러를 차지한다. 또한 FTA 체결 당시인 2007년 제약업계의 매출손실은 연간 367억∼794억원으로 추정,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분석됐었지만 이번 재협상으로 피해액을 그만큼 줄일 수 있게 됐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