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라운지] ‘한·미 FTA 재협상’ 똘똘 뭉친 美

입력 2010-12-05 18:50

미국이 한 수 높았다. 협상팀의 협상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전체적으로 국익을 챙기려는 이해당사자들의 집요함이 그랬다.

우선 미국의 정치권. 상하원은 올해 초부터 줄기차게 자동차 부문의 불균형을 집중 공략했다. 단순히 버락 오바마 정권을 흔들려는 추상적이고 정치적인 공세가 아니었다. 6000대 47만, 의원들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것은 한국의 대미(對美), 미국의 대한(對韓)수출 자동차 대수 비교수치다.

여야 구분 없이 상하원 의원들은 정부에 재협상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런 정치적 행동은 외교나 통상 협상에서 자국 협상팀의 협상력을 높여준다. 의원들은 전반적으로 자동차에 집중하면서도 간간이 쇠고기 수입 확대 문제를 거론했다. 그냥 놔두는 게 더 좋다는 업계의 판단도 고려한 것이다. 그러면서 협상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관련 의원들은 목소리를 가끔 높였다.

11월 초 서울 G20 정상회의 때에는 FTA와 관련된 주요 상하원의 보좌관들이 협상단과 함께 서울에 갔었다. 이들은 협상단과 주요 상하원들의 연락관이었다. 협상팀은 본국 지침과 함께 사실상 의회와도 조율한 것이다. 이번 협상 기간 중에도 미국 협상팀은 의회는 물론 업계와도 의견을 교환했다.

11월 초 타결에 실패한 뒤, 미 정치권의 요구는 보다 더 구체적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국내 총수요 대비 수입차 비중에서 한국이 꼴찌에서 두 번째라는 통계도 곁들여졌다. 각종 비관세 장벽도 거론했다. 자동차 문제는 한국의 쇠고기처럼 미국에서도 정치적 이슈이다. 그런 이슈를 의회는 공세를 펴고 행정부는 이를 적절한 지렛대로 삼았다.

재계와 노조도 협상력을 키워준 건 물론이다. 그렇게 정부를 몰아세우던 재계와 전미자동차노조는 FTA 타결이 소식이 나오자마자 환영 성명을 냈다. 백악관은 한·미 협상팀이 약속한 발표시점을 무시하면서까지 자동차 부문 합의 내용을 기자들에게 미리 흘렸다. 그냥 흘린 게 아니라 상하원과 업계의 환영 입장까지 가지런히 정리해 발표했다.

자동차에 관한 미국 내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오로지 이익 확보라는 목표를 위해 사실상 한 지휘관 밑에서 작전을 수행하듯 한 것이다.

우리 정치권처럼 추상적이고 대안 없이 그저 ‘굴욕협상’이니 ‘퍼주기’니 하는 내용 없는 비난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