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이… 사회지도층 성희롱 심각
입력 2010-12-05 18:21
2008년 6월 A시청 공무원 60명은 강원도 영월 지역에 산업시찰 겸 야유회를 떠났다. 이들은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술자리를 벌였다. 술에 취해 흥에 겨운 남성 공무원 몇 명이 상의를 벗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한 남성은 맥주 캔을 흔들어 술을 뿌리는 등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행위도 했다. 다른 남성은 가슴 털을 뽑아 소주잔에 넣은 뒤 공무원들에게 권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여성 공무원 4명은 안중에도 없었다.
동승했던 여성 공무원 B씨가 이 일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조사 과정에서 관련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여성에게 술을 권하거나 춤을 추도록 강요한 사실은 없다”고만 해명했다. 인권위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관련 공무원을 경고 조치토록 권고했다.
인권위는 2009년 6월부터 1년 동안 시정을 권고한 주요 성희롱 사례 18건을 담은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 제3집’을 발간했다. 사례집에 따르면 공무원, 의사, 기업·사회복지단체 간부 등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의 성희롱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탈모 전문 피부과 의사는 회식 중 여성 피부관리사에게 “누워서 하는 것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성관계”라는 발언을 했다. 이 여성은 성적 굴욕감을 느껴 다음날 퇴사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해당 의사는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회식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 말을) 했을 뿐”이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동보호시설의 한 상급자는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에게 “안아 달라” “너를 사랑하면 안 될까” 등의 발언을 하고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몸을 만져 인권위로부터 200만원 손해배상 권고를 받았다.
한 여행업체 회장은 여비서에게 밤늦게 전화를 하거나 “매력이 없으니 성형 수술을 하라”고 말했다. 한 건설회사 간부는 응급구조사로 입사한 여직원에게 “결혼해서 남편에게 애 낳는 모습을 보여주면 남편의 성욕이 떨어진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04년부터 지난 6월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성희롱 관련 진정은 751건으로 집계됐다. 이들 사건에서 성희롱 혐의를 받은 사람은 기업·단체의 경영자(24.5%)와 중간관리자(23.3%)가 대부분이었다. 공무원·준공무원(14.2%)과 교직원(12.0%)도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