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유병규] 슈퍼스타K와 기업 M&A

입력 2010-12-05 19:12


요즈음 공정사회 관점에서 큰 관심을 끄는 두 개의 경쟁 스토리가 있다. ‘슈퍼스타K’와 거대기업 인수·합병(M&A)전이 그것이다. 슈퍼스타K는 케이블 채널 엠넷(Mnet)이 생존게임 형식으로 만든 신인가수 발굴 프로그램이다. 거대기업 M&A는 채권단이 국내 최대 건설회사를 시장에 매각하는 일이다.

둘 사이에는 아주 뚜렷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한다. 공통점은 둘 다 모두 경합이 매우 치열했다는 점이다. 차이점은 슈퍼스타K는 멋진 경선 후에 ‘허각’이라는 대중스타를 탄생시킨 데 반해, 건설 M&A는 승자를 결정한 후에도 부끄러운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는 공정사회를 상징하는 모범적 사례로 각계각층의 칭송을 받고 있지만, 후자는 국내 경제계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불공정한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표적 사건으로 남을 것이 염려되는 상황으로까지 내닫고 있다.

두 경쟁 상황이 극과 극의 다른 결과를 낳은 배경을 짚어보면 공정사회가 되기 위한 소중한 지침을 얻는다. 첫째, 선입견과 편견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슈퍼스타K의 선발 과정에서는 가수로서 지녀야 하는 외모, 학력, 재력에 대해 어떠한 사전 기획도 없었다. 수만명의 예선을 거쳐 최종 후보로 남은 경쟁자는 두 사람이었다. 준수한 외모와 훤칠한 키에 미국 유명대학 학력을 지닌 존박과 중졸 학력에 작은 키의 평범한 외모를 지닌 허각의 최종 대결은 예상외로 허각의 승리였다. 의도된 방향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승리는 모든 이에게 감동 그 자체였다. 기업 M&A에서는 외형주의에 사로잡혀 대형기업이어야만 한다는 편견이 지배했다.

둘째, 주어진 판정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슈퍼스타K는 온라인 사전투표, 심사위원 평가, 실시간 문자투표라는 공정한 심사 체계를 두루 갖추었다. 모든 참여자들은 심사 기준을 그대로 따랐다. 경선이 끝난 후 새로운 심사 기준이 필요하거나 더 엄격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소리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다. 이번 건설사 M&A는 시작부터 부작용을 걱정해 과거에 비해 매우 엄격한 심사 기준을 마련했다. 기업 부실을 막기 위해 비재무 평가 기준을 강화했고, 이전에는 가능하던 피인수 기업 주식을 담보로 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기업 규모가 크고 재무 능력이 뛰어난 기업이 유리한 조건이었다. 그런데도 선정 결과가 나온 후에 더 세심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큰 기업이어야 한다는 사전적 선입견 때문이다.

셋째는 ‘패자의 축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존박은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승자를 축하하는 여유와 아량을 나타내며, 자신의 음악세계로 돌아가는 자신감을 보였다. 패자 역시 승자만큼이나 갈채와 찬사를 받은 비결이다. 기업 M&A에서는 승자의 약점을 발견하고 판정에 불복하고 결과를 뒤집으려는 온갖 분란이 일고 있다. 패자의 저주가 경쟁의 판 자체를 뒤엎는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넷째는 독립적이고 권위있는 심사단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수 선발 심사단은 주관이 뚜렷하고 실력을 갖춘 연예인들로 자신들의 판정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최종 결과에 대해서도 공동 책임을 졌다. 기업 M&A 평가단은 심사 전 과정에 모두 참여해 장시간에 걸쳐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고 논의를 거쳐 최종 결과를 발표했는데도 나중에는 서로 딴소리를 하고 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고 강경해진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압력을 받고 있거나 각자의 서로 다른 사익을 추구하는 게 아닌가라는 시중의 낭설을 낳는 배경이다.

시장경쟁 원리에 충실해야 할 국내 경제계가 채권단, 기업, 금융당국 모두가 패배자가 될 불공정 게임의 원형을 만들고 있다. 국내 M&A 활성화와 시장 경쟁의 성숙을 원한다면 이번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기존 규정과 제도와 관행에 따라 건설 기업 매각작업이 다시 정상적으로 추진되도록 해야 한다. 경선 불복을 일삼는 정치권을 3류라고 비웃는 경제계가 이보다 못하다는 조롱을 받아서는 안 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