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종 다문화시대] 청주 다문화체험강사들 “선생님 소리 듣고… 통장 불어나고… 정말 꿈만 같아요”
입력 2010-12-05 16:52
“하하하, 호호호.”
아줌마 10여명이 모인 방은 웃음소리와 함께 왁자지껄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충북 청주 남문로 2가 번화가에 자리잡고 있는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 3층 무지개다리 다문화체험강사실. 지난주 초 찾은 이곳에선 중국 몽골 러시아 일본 베트남 태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이들이 서툴지만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며, 한지로 손거울을 만들고 있었다. 2일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은 이주여성사업단 ‘떴다! 무지개’의 일원들로, 다문화체험강사를 하고 있는 이들은 수업이 없는 날은 이곳에 모여 한지공예도 하고, 교재도 준비한다고 했다.
몽골에서 온 체체그수렌(38·청주시 영운동)씨는 “한지공예는 유목문화에선 찾아볼 수 없는 것이어서 너무 신기했다”면서 “아이 학교에서 학부모 작품 발표회에 등과 다반을 보내 칭찬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1998년 결혼한 그는 “예전에는 한국말 가르쳐주는 곳이 없어 혼자 익히느라 매우 힘들었는데 요즘은 참 좋아졌다”고 했다.
2008년 6월 한국에 왔다는 쥬비 인 보이(31·청주시 수곡동)씨는 “이곳에서 말만 배운 것이 아니라 잃을 뻔했던 꿈을 키워가고 있다”고 했다. 고국 필리핀에서 선생님을 하다 시집온 그는 “이제 아줌마로 살게 됐구나 했는데, 다시 선생님을 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2005년 결혼한 에르헴 체첵(32·청주시 석수동)씨도 쥬비씨와 같은 경우. 몽골에서 역사 선생님을 했다는 그는 이곳에서 계속 몽골 역사를 가르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포기했던 꿈을 이룬 이도 있다. 2003년 베트남에서 시집 온 남수양(베트남 이름 윙호죽·30·청주 율량동)씨의 어린 시절 희망은 선생님이었다. 고향에서 판매사원을 했었다는 그는 ‘선생님’ 소리를 듣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한국에 일하러 온 친정엄마가 중매를 섰다는 이은설(35·청주시 성화동)씨도 선생님 소리를 들으면 뿌듯하다고 했다. 조선족인 그는 “가족이 화목하게 사는 게 꿈이었는데, 사회복지가 중국보다 잘 돼 있고 아이 키우기가 편한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꿈을 이룬 셈”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아인(본명 도티 김 와인·29·증평군 증평읍)씨는 “가게를 하나 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면서 강사료가 많지는 않지만 종잣돈이 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그는 베트남에서 2007년 시집왔다.
물론 모든 이들이 꿈을 이룬 것은 아니다. 통역사를 했었다는 장유보위(37·청주 사천동)씨는 “통역일을 계속하고 싶은데 지방이어서 일자리가 없다”고 털어놨다. 러시아에서 2003년 결혼해 한국에 왔다는 그는 “강사 경험이 한국말을 더 잘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다문화체험강사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고향에 상품을 주문해 무지개나라 다문화멀티마켓에 납품하는 오퍼상도 겸하고 있다. 한국이 너무 좋아 아들 이름을 대한(6)이라고 지었다는 태국댁 아리야 샌드(30·청주시 성화동)씨는 “전통의상 등 물건을 잔뜩 주문했다”면서 “장사가 잘 되면 우리 통장은 더욱 두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 정승희 사무처장은 “마켓에서 생긴 이익금과 강사들이 받는 수강료는 예금해두고 퇴직금, 상여금, 복지후생비로 쓰고 있다”고 밝혔다. 다문화체험강사는 사회적 일자리여서 급여는 고용노동부에서 나오고 있다.
‘떴다! 무지개’는 이달 중순 청주시 우암동 우암산 중턱에 자리한 아늑한 4층짜리 건물로 이사 간다. 이은설씨는 “그곳에 가면 다문화가정과 일반 가정 아이들에게 한지공예를 가르칠 것”이라면서 “아이들이 자꾸 어울려야 문제가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시집 와서 꿈을 이뤘지만 걱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하지만 그들은 혹시 아이들이 차별 받을까봐 가슴을 졸이는 대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뛰는 용감한 엄마들이었다.
청주=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