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종 다문화시대] 한국서 13년째 근무 스리랑카인 프레마랄씨… ‘고충상담 업무’ 보람 느껴요
입력 2010-12-05 16:51
서울 가리봉동에 있는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2층 사무실. 오전 10시인데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전화 벨소리가 들려온다. 베트남, 방글라데시, 네팔 등 여러 나라 상담사들 사이에서 스리랑카 출신의 프레마랄(40)씨가 차분하게 상담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푸근한 미소를 지닌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 프레마랄씨의 한국과의 인연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리랑카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공군에서 8년간 복무한 그는 친형의 권유로 해외로 나갈 결심을 한다. 처음 생각한 건 일본이었다. 형도 일본을 추천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스리랑카의 한 은행에서도 제의가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일본으로 가면 월급을 배로 받을 수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한국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는 97년 김포의 한 공장에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취업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브레이크 관련 부품을 만들던 회사였다. 31만6000원의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몇 달 만에 한국에는 외환위기가 닥쳤다. “1년 동안 회사에 일이 없었어요. 1주일에 하루 일 한 적도 있고요. 결국 그 회사에서 나와 도망쳤습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불법체류자’라는 꼬리표였다. 새로운 회사에 취업했다. 가구를 만드는 회사였다. 주변에 있던 한국 사람들은 그에게 상말을 퍼붓기 일쑤였다. 그는 “한국말이 서툴러서 그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하지만 공장장은 프레마랄씨를 따뜻하게 감쌌다. 공장장은 프레마랄씨에게 욕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 사람은 자기 나라에서 공부를 했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잘살기 위해 여기에 온 거다. 욕하지 말라”고 감쌌다. 지난 13년간 한국에서 지내며 차별대우를 많이 경험했지만 한국을 신뢰하는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처럼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를 깔보는 시선은 못마땅하다. “지난해였어요. 지하철역에 있는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는데 한 남자가 와서 욕을 하며 전화를 끊으라는 거예요. 그 사람 집 앞에서 휴대전화로 시끄럽게 떠든 것도 아니고, 공중전화에서 전화하는데 뭐가 문제였나요? 그 남자 부인도 옆에서 그냥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 남자가 저를 거칠게 몰아붙이자 주변에 있던 다른 한국 분들이 ‘죄송하다. 일부 한국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하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으니 이해해 달라’고 대신 사과했습니다.”
그는 2006년부터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상담업무를 하고 있다. 억울한 일을 호소할 데가 없는 스리랑카인을 돕기 위해서다. 2004년 스리랑카에 쓰나미가 몰아쳤을 때 그는 봉사활동을 떠난 김해성 목사를 돕기 위해 함께 출국했다. 불법체류 상태였기 때문에 다시 한국에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장이기도 한 김 목사는 프레마랄씨의 성실함과 근면함을 높이 사 그를 채용했다.
가장 많이 상담하는 건 직장을 옮기는 문제다. 프레마랄씨는 “단순히 돈을 더 받기 위해 옮기려는 건 절대 안 들어준다”고 못 박았다. “스리랑카에서 여기 올 때 1년 계약하고 임금도 정해서 옵니다. 그런데 막상 오면 월급을 더 주겠다는 다른 사업주가 있어서 그리 가려고 해요. 그러면 불법체류가 됩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스리랑카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지요. 이건 나라 이미지의 문제입니다.”
그는 2005년 스리랑카에 있을 때 결혼을 했다. 아내와 두 아이, 어머니와 동생이 스리랑카에 함께 살고 있다. “계속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요. 언젠가 딸에게 제가 지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아빠가 다른 나라에서 스리랑카 사람을 돕고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할 거예요.”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