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조승우의 완벽 연기·가창력에 빠지다
입력 2010-12-05 17:27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선과 악의 이야기다. 한 인간 안에 내재된 선과 악의 싸움을 2시간40분 동안 펼쳐낸다. 선과 악 양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과 내면의 싸움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가 이 작품의 성패를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열쇠는 배우들, 특히 지킬과 하이드를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주역의 역량에 달려있다.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를 기다린 이유이기도 하다.
4년 만에 이 작품에 복귀한 조승우의 노래는 특별했다. 가창력으로만 따지면 그보다 훌륭한 뮤지컬 배우는 있다. 하지만 조승우 만큼 가사에 감정을 실어 전달하는 배우는 없다. 그는 노래를 한다기보다 대사를 멜로디에 실어서 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킬 앤 하이드’가 여러 번 공연을 거치며 번역이 부드럽게 다듬어진 이유도 있지만 노래로 대사를 표현하는 조승우의 실력은 확실히 다른 배우보다 뛰어났다.
선하고 친절한 지킬 박사가 스스로에게 약물을 주사하고 욕망과 분노로 가득한 하이드로 변하는 장면은 하이라이트다. 약물의 괴로움에 온 몸을 뒤틀며 지킬이 하이드로 변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30여초. 머리를 풀어헤치고 목소리를 허스키하게 바꾼 것 뿐인데 느낌은 전혀 달랐다. 두 명의 배우가 따로 지킬과 하이드를 따로 연기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조승우는 두 모습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2막에서 지킬과 하이드의 모습을 반씩 분장하고 좌우를 번갈아 돌려가며 ‘대결(Confrontation)’을 열창하는 모습도 쉽게 뇌리에 잊히지 않을 장면이다.
아직 조승우의 공연을 한 번도 못 본 관객이라면 봐야할 공연 목록에 올려도 후회 없을 공연이다. 하지만 이미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를 봤다면 다소 아쉬울 부분도 있다. 오리지널 버전에는 있었으나 그동안 국내 공연에서 생략됐던 1막 첫 곡 ‘난 알아야 해(I need to know)’는 다소 이질감이 느껴졌다. 무대는 좁은 느낌이었고, 거기에 비해 배우들이 많이 등장해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지킬 앤 하이드’는 내년 3월 31일까지 서울 잠실동 샤롯데시어터에서 공연된다. 류정한 홍광호 김준현 등이 조승우와 번갈아 같은 배역을 소화한다(1588-5212).
김준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