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0-12-05 19:24


(23) 행간 읽기-거룩한 상상력

행간 읽기. 글을 읽으면서 저자가 의도는 갖고 있으면서 부러 쓰지 않은 것을 짐작하는 일이다. 시나 소설, 논문이나 언론의 기사에서 글쓴이가 의도하지 않은, 또는 의도하지 못한 것을 독자가 글의 내적인 논리에 근거해서 읽어내는 것이다. 독자가 어떤 글이든 읽으면서 글이 자극이 되어 자기 삶과 삶의 주변을 연결시키면서 생각이 펼쳐지는 일이다. 행간 읽기를 하면서 글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흐름이 된다. 부러 표현하지 않은 저자의 생각을 파헤치며 글이 꿈틀거린다. 미처 표현하지 못한 저자의 사유와 심정이 독자의 생각을 통해 자라고 피어난다. 글쓴이와 읽는 이가 어우러지고 이들이 숨 쉬고 걷고 있는 삶의 현장이 작동한다.

성경을 읽을 때는 행간 읽기를 ‘거룩한 상상’이라고 한다. 신학자 선배가 꽤 길게 이메일을 보내 설명한 내용이다. 페이스북으로 마가복음 묵상에서 길어낸 생각의 단상들을 몇 번 보냈더니 선배도 페북에서 댓글을 달아주더니, 어떤 감동이 있었는지 아예 이메일의 첨부파일로 거룩한 상상력에 대해 장장 A4 네 쪽 분량을 적어 보냈다. 선배의 글을 줄이면 이렇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 말씀의 선생은 성령이시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니까, 성령만큼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분이 없다. 66권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깊이 알고 깨달으려면 성령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깨달음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삶에 이어져 구체적인 일상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가려면 성령의 임재와 현존이 반드시 필요하다. 성경 말씀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방법이 ‘묵상’이다. 묵상은 가장 간단하게 말하면 성경 내용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묵상은 말씀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걸 말씀묵상이라고 한다.

말씀묵상에서 중요한 것이 거룩한 상상력을 훈련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독서법으로 말하면 행간 읽기인데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는 거룩한 상상이라고 한다. ‘거룩하다’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거룩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묵상할 때 거룩한 영이 오셔서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요, 그렇게 묵상한 결과가 삶을 거룩하게 하는 데까지 이어지기 때문이요, 이 모든 과정을 통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이유로 선배의 글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선배가 신학에 문외한인 나를 배려해서 비신학적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썼고, 그동안 내가 성경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말씀을 묵상하는 데 대한 책 몇 권을 읽은 까닭이다.

마가복음의 예수 이야기에서 10장과 11장 사이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가 끼어있다. 10장 마지막을 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52절). 여리고에서 시각장애인을 고친 사건의 마지막 장면이다. 여리고는 평지 도시다. 11장 1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루살렘은 해발 800여m의 산성도시다. 그러니까 10장과 11장 사이엔 강릉에서 대관령 정도까지 산을 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거룩한 상상을 하며 내가 예수와 같이 산을 오르는 듯했다.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