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정년, 필연인가 유혹인가

입력 2010-12-05 17:10

[미션라이프] 최근 한 대형교회가 공동의회를 열어 교단탈퇴를 선언하려 했다. 이유는 목사 정년 때문이었다. 교단법에 따라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담임목사 정년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다행히 담임목사의 결단으로 없었던 일이 됐지만 사회적 이슈가 될 뻔했다.

그동안 교단의 정기총회 시즌에 맞춰 목사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헌의안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곤 했다. 의학의 발달에 따라 평균 수명이 증가됐으니 목사의 은퇴 연령 또한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특정 교단을 제외하곤 목사 정년을 73세 또는 75세로 변경하기 위한 헌의안들이 부결되기 일쑤였다. 정년 연장 반대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유라기보다는 개인적 욕심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한다. 또 일반 공무원과 직장인들의 정년이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인데 비해 기존의 목사 정년이 충분히 높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반면 연장 찬성자들은 고령화되는 사회적 흐름에서 정년 연장은 필연적일 뿐 아니라 경험 많은 목회자들의 활동무대를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편다.

△목사 정년 연장, 필연인가 유혹인가=원기 왕성한 목회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더 많이 사역하고 싶을 것이다. 원로목사로 뒷방으로 물러나기 보다는 영원한 현역이 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수 있다. 정년에 발목 잡혀 노목회자의 경륜과 열정을 활용할 수 없다면 그 또한 손실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과 보편성, 사역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감안하면 목사가 현역만을 고수한다면 지탄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정년을 늘렸을 경우 담임목사의 왕국화를 고착화시키고 목회자 적체현상이 심각해져 교회의 질적 하락까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목소리가 절실한데 목회자가 오랫동안 한자리에 머무름으로 교회가 침체되거나 활력을 잃게 되고 그로 인해 교회가 갈등을 겪게 되면서 퇴보를 거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나이가 권위인 시기가 있었다. 정년이 돼 은퇴한 전임 리더가 젊은 후임 리더에게 지도력을 계승시키고 그 권위를 인정하며 존중한다는 게 매우 어려웠다. 위치를 물려줘도 권위까지 이어주기 쉽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연동중앙교회 전동운 목사는 정년 7년을 앞두고, 사랑의교회 고 옥한흠 목사와 신천중앙교회 서달수 목사 등은 정년 5년을 앞두고 조기 은퇴해 신선한 바람을 불게 했다. 최근에는 이동원 최홍준 목사가 조기 은퇴했다.

△목회자 정년 만 70세가 대세=대한성공회의 목회자 정년은 65세로 타 교단에 비해 낮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합동, 고신,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등 거의 모든 교단이 목사 정년을 70세로 하고 있다. 교단에 따라 65세를 자원 은퇴 연령으로 삼고 있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만 70세가 되는 해 연말이 정년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만 70세가 되는 생일을 지난 후 가입 노회에서 인사노회(1년에 두 번 열리는 정기노회 중 하나)가 열리는 날까지가 정년이다. 65세부터 자원 은퇴가 가능하다. 기독교한국루터회도 만 70세가 정년이지만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하고 정년 은퇴한 담임목사의 처우문제는 해당 교회의 결정에 따르게 돼있다. 기감은 70세가 된 후 처음으로 개최되는 연회(통상 4월)에서 은퇴하도록 규정했다. 기감의 교리와 장정에는 ‘만’이라는 규정이 없지만 관례상 만 70세다. 기감도 65세 이상이 되면 연회해서 자원 은퇴할 수 있다. 감독회장은 임기를 마친 후 처음 개최되는 연회에서 은퇴한다. 예장 백석 경우 목사 정년이 만 70세 연말까지지만 공동의회의 3분의 2 찬성으로 1회(3년)에 한해 연장할 수 있다. 물론 조기 은퇴도 할 수 있지만 연령을 정해놓지는 않았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는 목회자 정년을 70세로 하고 정년 된 자는 교회의 모든 공직에서 자동사임하도록 명기해놓았다. 교단법에 따르면 자원 은퇴는 65세 이후며 지교회의 예우는 70세까지로 하게 돼있다. 기성에서는 2000년대 중후반 정년을 65세로 낮추는 방안이 헌의안으로 올라온 적이 있었다. 예수교대한성결교회의 목사 시무정년은 호적상 만 70세다. 자원 조기 은퇴의 경우 잔여임기까지 공직을 수행할 수 있다. 교회는 호적상 만 70세까지 담임목사에 준하는 예우를 해야 한다.

예장 합동은 정확한 은퇴 날짜 적용을 언제로 할 것인가의 논란을 지난 가을 총회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주민등록상 만 70세가 되는 생일까지다. 합동은 2년 전 총회에서 고제동 목사의 정년 만 70세 유권해석에 대한 질의에 대해 만이라 하면 생일을 가산일로 해 다음 생일 전까지, 즉 만 71세가 되는 생일 전일까지라고 해석했었다. 이에 따라 정년이 이전보다 364일 늘어나게 돼 일대 혼란을 가져왔었다. 특정인을 염두에 둔 꼼수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총회에서 목사 정년과 관련해 잘못된 결의를 바로 잡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예장 통합은 2008년에 이어 지난해 9월 총회에서 ‘75세 정년 연장안’ 헌의가 올라와 찬반 논란을 빚었다. 결국 거수로 의견을 물어 재적 987명 중 43명만 찬성해 안건 자체가 폐기됐다. 통합에서는 1988년 목사와 장로 정년을 65세로 조정해 달라는 헌의안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예장 대신, 개혁은 고령화시대라는 명분으로 정년을 고치려했다가 좌절됐다. 대신은 지난 9월 정기총회에서 담임목사 정년 73세 연장안을 부결시켰다. 예장 개혁(총회장 조경삼 목사)도 지난 9월 정기총회에서 75세로 연장하려다가 일부 젊은 총대들의 반대로 좀더 연구, 검토하기로 했다. 반면 또 다른 개혁측(총회장 호세길 목사)은 지난달 3개 교단(예장 개혁, 합동보수, 개혁) 통합을 선언한 자리에서 정년을 70세에서 75세로 연장시켰다. 다만 은퇴 목회자는 총회 상비부서(산하 단체장은 제외)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했다.

물론 정년이 없는 교단들도 있다. 기독교한국침례교회(기침),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기하성 여의도순복음측, 기하성 통합측이 그 예다. 기침은 성경에 목회자 정년 규정이 없기 때문에 정년을 규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국교회 정서상 정년이 70세이기에 목회자가 자유롭게 70세 이후 원하는 시기에 은퇴하고 있다. 이동원 지구촌교회 목사는 65세, 한명국 서울침례교회 목사는 69세, 김장환 수원중앙침례교회 목사는 70세에 은퇴했다. 정인도 서문교회 목사는 75세로 계속 시무하고 있다. 기침도 2002년 70세 정년안을 도입하려 했지만 부결됐다.

목회자 정년이 없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목회자들이 은퇴 시점을 훨씬 지나서도 생계형 목회를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퇴해야 할 때 물러나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목회현장에 남아있는 것은 개인과 교회는 물론 교단 차원에서도 불행한 일이다. 과거 기하성은 목사 정년을 70세로 했다가 교회가 원할 경우 75세로 늘렸다가 2008년 통합과정에 그 같은 규정을 없앤 바 있다.

△정년 연장 유혹엔 죄성과 은급(연금) 문제 있다=자기가 개척한 교회나 크게 성장시킨 교회를 남에게 물려주는 게 쉽지 않다. 이는 교회 세습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정년을 무리하게 늘려서라도 후계자를 자식 및 직계 그룹에서 찾아 물려주고 싶어한다.

목회자들이 정년 연장에 집착할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는 은퇴 이후 고정 수입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예장 통합, 기감, 기성 등 주요 교단을 제외하곤 목회자들의 은급 가입률과 월 고정 수령액 또한 높지 않다. 예장 통합은 은급재단 자산이 2405억원에 달하고 가입목회자가 1만1247명으로 가입률이 70%를 넘어섰다. 월 수령액이 20년 납입했을 시 150만원으로 꽤 높은 편이다. 기성은 은급재단 자산이 381억원으로 통합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가입 목회자 4790명 중 현재 515명이 매월 연금을 받고 있다. 액수는 월 최소 60만원이다. 은급재단 자산 규모가 356억원에 달하는 기감은 목회자 허입 시 자동적으로 은급재단에 가입, 은퇴와 동시에 혜택을 받게 한다. 기감은 기금 고갈 등을 우려해 2008년 1월부터 새로운 은급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밖에 목회자의 납부 총액에 따라 매월 예장 합동은 20∼100만원, 예성은 45만원, 기장은 75만원을 받는다. 예장 고신 목회자는 20년간 은급비를 냈을 경우 월 130만원 정도를 받게 된다. 기하성 연금재단은 여의도순복음측(이영훈 목사), 기하성(총회장 박성배 목사) 기하성 통합(조용목 목사)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시작한 지 6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자산은 118억원에 달한다. 가입 목회자는 2100명, 현재 6명이 월 50만원 정도를 받고 있다.

박종언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총무는 목회자 은퇴와 은급문제의 상관관계를 들어 정년을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총무는 “일부 대형교회나 은급이 잘 돼있는 몇몇 교단을 제외하곤 노후 문제가 녹녹치 않은 게 사실”이라며 “성도 100명도 안되는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원로목사를 함께 두는 게 쉽지 않아 현실적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목회자에게는 가혹할 수 있지만 사회적 통념에 따라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는 게 순리”라고 했다.

이광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은 “보통 목회자가 은퇴하면 집 한 채, 약간의 연금, 병든 몸 등이 남는 게 정상”이라면서 “소명을 따라 사는 목회자라면 정년 후까지도 하나님을 철저하게 맡기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회장은 “목회자도 인간인 이상 유혹에 빠질 수 있으니 교단과 교회 차원에서 노후 대책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며 “수십년간 쌓은 리더십과 명성이 물질 때문에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