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유치 실패 후폭풍] 시련의 정몽준… 빛 바랜 개인 역량
입력 2010-12-03 23:22
2018·2022년 월드컵 개최국 동시 선정 결과는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의 국내·외 입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내년에 있을 FIFA 부회장 선거뿐만 아니라 2012년 대선 레이스를 위한 전략 변경도 불가피해졌다.
3일(한국시간) 스위스 취리히 메세첸트룸에서 끝난 2022년 월드컵 개최국 투표에서 한국은 1라운드 4표를 시작으로 2, 3 라운드에서 각각 5표를 얻는 데 그쳐 4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각각 1, 2 라운드에서 탈락한 호주와 일본에 앞서긴 했지만 탈락국들의 지지표를 결집시키는 데 실패했다. 라운드를 거듭하면서 탈락국의 표를 모아 최종 라운드에서 미국과 대결을 벌인다는 투표 전 구상이 차질을 빚은 것이다.
라운드별로 일정한 지지를 받은 것은 정 부회장의 개인 역량이 빛을 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6년 간 집행위원 활동으로 구축한 고정 지지층에다 투표 전 각 나라를 돌며 설득 작업을 벌인 것이 영향을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노력 덕에 한국은 강력한 도전자였던 호주 및 일본까지 따돌리고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능력은 거기까지였다. 정 부회장 개인에 기대는 것 외에 반드시 한국이 유치해야 한다는 명분과 당위성이 약했다. 정 부회장은 개최지 발표 후 “조금만 더 뛰면 된다고 설득을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국내에서 월드컵 유치에 대한 큰 관심이 없었던 점도 아쉽다”고 심경을 밝혔다.
유치 전을 통해 정 부회장의 영향력은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정 부회장의 입지는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될 전망이다. 지난 10월 2022년 월드컵 유치에 전념하기 위해 내년 5월 열리는 FIFA 회장 불출마 선언을 한 상황에서 당장 내년 1월 FIFA 부회장 선거가 당면 과제다.
2007년 FIFA 부회장 선거에서 4선에 성공한 정 부회장은 4년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FIFA 부회장 선거를 치러야 한다. 2007년 선거까지는 확실한 라이벌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요르단 축구협회 회장인 알리 알 후세인이 정 부회장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이자 카타르 출신의 모하메드 빈 함만 AFC 회장이 같은 중동 출신의 후세인을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또 한나라당 대표 활동이 끝난 후 유치전에 매달리다시피 한 정 부회장 입장에서는 준비도 부족해 결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아울러 정 부회장의 대권 행보에 날개를 달아줄 추진력도 함께 사라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성공을 등에 업고 대통령 후보로까지 급부상했던 정 부회장 입장에서는 2022년 월드컵 유치가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매력적인 동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유치 실패로 정 부회장은 대선으로 이어지는 전략을 재점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김현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