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거장, 사랑에 빠지다… 슈만과 브람스가 사랑한 여인 ‘클라라’ 12월 16일 개봉

입력 2010-12-03 19:33


독일 낭만주의 고전음악의 대가 로베르트 슈만(1810∼1856)과 그의 아내인 피아니스트 클라라 비크 슈만(1819∼1896), 그리고 이 부부가 후원했던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이들이 평생 주고받았던 편지와 애정은 호사가들의 좋은 얘깃거리였고 문학작품의 소재였다. 올해는 슈만 탄생 200주년이기도 해 이들의 이야기를 음악회 등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헬마 샌델 브람스 감독의 새 영화 ‘클라라’도 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1853년, 갓 스무 살이 넘은 브람스는 유명한 음악가 부부의 눈에 띄는 행운을 얻게 된다. 전도유망한 젊은이는 슈만 부부와 함께 사는 영광까지 누린다. 슈만은 브람스의 재능을 높이 사 “나의 뒤를 이을 사람”이라는 말로 사람들에게 그를 소개했고, 그에게 헌정하는 곡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남아 있는 숱한 편지가 증명하듯, 브람스가 사랑한 사람은 다름 아닌 슈만의 아내 클라라다. 그러나 평생 슈만의 충실한 아내였던 클라라는 젊은 브람스를 우정으로만 대했다. 슈만이 병든 뒤 클라라와 아이들의 삶이 어려워지자 브람스는 그들 가족에게 물질적·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클라라가 피아니스트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들의 교류는 평생 동안 지속되었다.

팩트(fact)를 나열하기만 해도 이렇듯 감동적인 줄거리라면, 연출자의 창작이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지 않을까. 브람스 감독은(요하네스 브람스의 후손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에 섣불리 손대기보다는 가능한 범주에서만 상상력을 동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슈만의 자살 시도와 발병 등 분명한 사실은 충실히 그리면서도 각 등장인물들에게 손에 잡힐 듯한 창조적 성격을 부여하고 이들의 만남과 인연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것. 슈만과 클라라가 살았던 집안 구조 고증까지 꼼꼼하게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이런 방식은 꽤 효과적이어서, 명백하게 상상력으로만 이뤄졌을 장면에서도 ‘그랬을 법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미 알려진 주제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변주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물론 배우들의 힘이다. 영화를 이끌어간 세 배우 모두 열연이라는 찬사가 어울릴 법하다. 여주인공을 맡은 마르티나 게덱은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생계 문제 때문에 고달파하는 중년의 클라라 슈만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연약한 몸에도 굳건한 의지로 꿋꿋이 어려움과 싸워나갔던 피아니스트 클라라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파스칼 그레고리(슈만 역) 역시 병마와 싸우며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음악가를 되살려 냈다.

클라라가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두 사람의 정신적인 애정의 결정체라고 할 장면이다. 클라라와 브람스가 평생토록 가깝게 지냈음을 말하는 자막이 뜨면 관객들은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하지만, 오래도록 지속되는 말릭 지디(브람스 역)의 표정 연기까지 모두 보지 않았다면 영화를 안 본 거나 다름없다.

예술영화인 탓에 상영관이 많지 않은 게 흠. 프랑스·독일·헝가리 합작으로 제작됐다. 영화 곳곳을 수놓는 슈만의 ‘라인교향곡’과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 ‘피아노협주곡 1번’ 등 낭만파 시대 클래식 음악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15세 관람가. 16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