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방민호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첫 시집 출간

입력 2010-12-03 17:29


문학평론가 방민호(45·서울대 국문과 교수·사진)가 첫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실천문학사)를 냈다. 그가 2001년 월간 ‘현대시’에 ‘옥탑방’ 등 3편의 시를 발표했을 때만해도 좀 의외다 싶은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의 시인 등단을 일종의 외도로 받아들인 경향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시는 고립의 나날, 가슴이 병들어 있던 시간, 구름처럼 먼 곳을 떠돌던 시간 속에서 솟아났다”는 ‘시인의 말’처럼 꽃으로 문질러도 멍이 드는 시적 영혼의 소유자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 보인 게 이 시집이다.

“당신은 내 아픈 눈동자 속으로 내 안에 들어와/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당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당신이 가라는 곳으로 가/당신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오”(‘빙의’ 부분)

방민호의 시는 이제는 떠나고 없는 사랑을 향한 읊조림에서 보편적 ‘부재’를 인식하는 모던한 지식인의 초상을 연상케 한다. 그는 ‘빙의’ 의식 안에 지난 20세기의 불우했던 유대계 독일평론가 발터 베냐민도 불러들인다.

“나는 베냐민을 닮은 사내/어깨 위에는 그를 괴롭히던 곱사등이가 앉아/내 길을 환하게 내려다본다/나치 피해 피레네 산맥 넘다 자살해버린/그이처럼 죽고 싶지 않아/규격에 맞는 논문 쓰려 한다/(중략)/하지만 나는 베냐민을 닮은 사내/남몰래 모르핀을 사 모은다”(‘나의 베냐민’ 부분)

고대인과 근대인의 비유, 즉 거인으로 상징된 고대인과 그 거인의 어깨 위에 앉은 난장이로서의 근대인에 대한 비유에서 발원한 것이 이 시편이다. 곱사등이가 위치한 어깨 또한 중요한 지점이다. 방민호는 직업적 평론가라는 점에서 베냐민과 서로 닮았다는 동류의식에서 출발해 베냐민의 불행한 운명에 자신을 겹쳐 놓는 벼랑 끝 정신주의를 노래하고 있다. 유년기에 그를 찾아온 불행을 지금도 어깨에 붙이고 사는 사내가 또한 방민호 자신이다.

“오른쪽 어깨에 달라붙은 담이 발간 불처럼 뜨거워/새벽에 깨어나는 버릇이 생겼다//두 살 때 외가 툇마루에서 떨어진 오른팔은/글을 쓸 때만 쓰는 불구가 되었다//놀이를 금지당한 오른손에 허용된 마지막 자유는/검지의 굳은살이 이스트빵처럼 부풀어 오르도록 쓰는 일뿐”(‘새벽에 담을 앓다’ 부분)

베냐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수많은 메모로 19세기 파리를 몽타주한 것처럼 방민호 역시 ‘탑 클라우드’ ‘보보호텔’ ‘MAUM’ 등 서울의 길거리에 늘어선 입간판을 통해 암울한 도시적 부유물들의 형상을 몽타주한다.

“정박하지 못하는 내 혼은 환영 같은 탑 클라우드를 타고 흔들리면서 흘러가면서 얇고 가느다란 여인의 향기로운 수풀 속으로 스며드는 꿈을 꾼다”(‘탑 클라우드’) 같은 시구는 그가 앓았던 ‘가슴이 병들어 있던 시간’의 증세를 짐작케 한다. 그 증세란 끝내 가닿을 수 없는 ‘당신’의 부재를 느끼는 상실자의 포즈인 것인데, 이 시집에서 치열하게 묻고 있는 것은 인간이기에 숙명처럼 따라올 수밖에 없는 ‘부재의 삶’이라는 명제이다.

정철훈 선임기자